한국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하에서는 상대국을 방문하는 형식의 한미 정상회담은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가 내다봤다. 자칫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동맹국인 한국의 대통령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먼저 만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보수 성향 미국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 소속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17일(현지시간) 워싱턴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좌담에 출연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트럼프 당선자와 나란히 다자회의에 참석한다면 서로 만날 수 있겠지만, 트럼프 당선자가 한국에 가거나 반대 상황(한 대행의 방미)이 생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의 정상 리더십 공백은 길면 내년 여름 이후까지 이어질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최우선 심리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르면 2, 3개월 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만 결정까지 보장된 기간(180일)을 헌재가 꽉 채울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탄핵으로 결론이 날 경우 대선까지 다시 최대 60일이 주어지기 때문에 앞으로 최장 8개월 가까이 한국의 정상 외교가 파행할 수 있다.
그사이 북미대화가 실현될 개연성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사실상 핵무기를 갖게 된 데다 대(對)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을 계기로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한 김 위원장이 쉽사리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핵심 근거다.
하지만 변수가 있다. 트럼프 당선자의 의지다. 클링너 연구원은 최근 트럼프 당선자의 인사를 대북 대화 조기 추진 가능성 시사 정황으로 풀이했다. 트럼프 당선자는 집권 1기 때 북미대화에 깊숙이 간여했던 알렉스 웡 전 국무부 대북특별부대표를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으로 지난달 내정한 데 이어, 한때 국무장관 후보로 거론됐던 ‘외교 책사’ 리처드 그리넬 전 주독일 대사를 북한 등을 담당할 대통령 특사로 14일 발탁했다.
트럼프 당선자가 내년 초 취임과 함께 초기부터 정상 외교를 통한 한반도 주변 안보 지형 재편에 착수할 경우 책임지고 의사 결정을 할 정상이 없다는 이유로 해당 논의에서 한국이 소외될 가능성도 있다.
전날 미국 플로리다주(州) 팜비치 마러라고리조트 기자회견 자리에서 동맹 일본뿐 아니라 적성국 북한과 중국 정상에게까지 한두 마디씩 우호적인 언급을 한 트럼프 당선자가 한국은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은 게 좋은 조짐은 아니다. 다만 호명할 대화 상대방(카운터파트)이 마땅치 않아 생긴 일로 볼 여지가 있는 만큼 의도적인 ‘한국 패싱’(배제)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