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가스비에 막막"... 올겨울 '최강 한파'에 쪽방촌은 더 서럽다

입력
2024.12.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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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건물 탓...난방으로  '역부족'
市 "매년 겨울철 대책 가동"
근본적인 주거 환경 개선 어려워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6도로 떨어지는 등 올겨울 '최강 한파'가 몰아친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이곳에 사는 서모(73)씨는 다급히 지붕 아래 매단 빨랫줄에서 옷가지를 걷었다. 한 평(3.3㎡) 남짓한 쪽방에 자리가 없어 집 앞에 빨래를 넌다는 서씨는 "이 날씨면 젖은 옷이 다 얼 것 같아 안에 들여놓는 중"이라며 "이제 본격적으로 추위가 시작됐는데, 또 어떻게 두 달을 버틸지 걱정이 앞선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단열재도 변변하게 설치되지 않은 낡은 건물에서 지내는 쪽방촌 주민들에게 '춥고 배고픈 계절'이 돌아왔다. 돈의동 쪽방촌에서 10년 넘게 거주 중이라는 김경환(71)씨는 "겨울에는 안 그래도 추워 서러운데, 최근에는 인력사무소에서 나이가 많다고 거절해 수입까지 끊겼다"며 "집이 1층이라 현관문 틈으로 바람이 계속 들어오다 보니 방 안도 쌀쌀해 외투를 껴입고 지낸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하루하루 견디면서 살다가 죽는 수밖에 더 있겠나"라고 읊조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지자체의 지원 사업과 봉사 단체들의 도움 덕에 난방 시스템은 갖춰졌지만 쪽방촌 주민들은 여전히 추위에 떨고 있다. 노후한 현관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찬 바람이 새어 들어오고, 방과 방 사이 벽이 얇아 냉기가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최근 가스비가 오르며 난방비 외에 히터, 온수 등 개별로 소비하는 가스비 부담도 커졌다. 아내와 함께 쪽방에 거주하는 이모(75)씨는 "여름에는 나와서 시원한 물이라도 마시면 그나마 더위가 가시는데, 겨울은 옴짝달싹 못 한다"며 "겨울은 여름보다 가스비가 문제인데, 기초생활수급비로 어떻게 지내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지난 9월 기준 돈의동 쪽방촌에는 약 490명이 거주하고, 이 중 70%가 기초생활수급자다. 서울시는 그간 쪽방촌 주민의 생계 부담을 덜어 주고,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동행식당·목욕탕' '온기창고' 등 지원 사업을 추진했다. 지난달 15일부터는 수도계량기 동파 예방·복구 체계를 구축하고, 난방용품·식료품 지원에 2억8,300만 원을 투입하는 등 겨울철 대책도 가동했다.

이날도 쪽방촌 관리 직원들은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얼어붙은 수도관을 열풍기로 녹이고 있었다. 최영민(53) 서울시립 돈의동쪽방상담소 소장은 "건물이 노후해 난방을 해도 추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기온까지 영하권으로 떨어져 곧 방한용품과 이불, 전기장판 등을 주민들에게 나눠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에는 현재 5개 쪽방촌(△서울역 △돈의동 △창신동 △남대문 △영등포)이 남아 있다. 주민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거주하기 위해서는 재개발·재건축이 시급하지만 건물·토지 소유주의 반발이 심하고, 도심이라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21년 재개발 계획이 발표된 영등포와 동자동 쪽방촌의 경우 주민을 임시 주거 공간으로 이주시키고 철거 및 공사를 시행한 뒤 다시 정착할 수 있도록 이주대책도 마련됐지만 소유주들이 '일방적인 재산권 침해'라고 반발하면서 진통을 겪고 있다.

권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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