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시국에도 문화예술을 권하며, 그것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취하려는 자세는 얼마나 미덕이 될 수 있을까. 답을 찾기 위해 꺼낸 시집은 '훔쳐가는 노래'였다. 진은영 시인이 고르고 닦은 시어들은 미학적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도 시대의 위기와 마주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옛날에 살인자는 용감한 병정들로 살인의 장소를 지키게 하지 않았다// 그건 오래된 이야기/ 옛날에 살인자는 아홉 개의 산, 들, 강을 지나/ 달아났다/ 흰 밥알처럼 흩어지며 달아났다// 그건 정말 오래된 이야기” ('오래된 이야기')
“너의 노래가 좋았다/ 멀리 있으니까/ 기쁨에서, 침묵에서, 노래에게서/ 혁명이, 철학이 좋았다/ 멀리 있으니까/ 집에서, 깃털 구름에게서, 심장 속 검은 돌에게서” ('그 머나먼')
며칠간 국회 앞을 메웠던 각양각색의 불빛을 떠올린다. 꺼지지 않는 촛불이자 무기인 그것은 수많은 K팝 팬덤의 응원봉으로, 한 사람의 정체성과 사랑을 대변하게끔 타고난 물건이었다.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결집에 화답하듯 집회 현장에서는 K팝을 선곡하기 시작했다. 분노와 결연함 속에서도 즐거움과 아름다움이 함께 있었다.
한국사 교과서나 문학 작품에서 접하게 되는 ‘오래된 이야기’가 오늘의 이야기임을 알게 될 때, ‘멀리 있으니까’ 좋던 아이돌 스타들은 한순간 가까워 보이기도 했다. 어떤 가수들은 팬과 같은 자리에 서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직접 시위에 참여하거나 메신저 서비스를 통해 목소리를 냈고, 본인을 향한 사랑으로 충만하던 응원봉에 혁명과 철학이 덧입혀지는 일을 응원했다.
이토록 당연한 차용은 어떻게 가능해질까. '훔쳐가는 노래'를 출간할 적에 진은영 시인은 귀띔한 바 있다. 대학 시절 바나나를 놓고 사랑시를 썼는데 누군가는 농수산물 수입 개방을 비판하는 시로 읽더라고. 향유자가 시대 속에 존재하는 한 문화예술은 시대와 떨어질 수 없다. 중대한 사회 현안을 놓고 투쟁하는 과정 속에서 시는 미학이라는 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할 수 있다. 이것은 현혹하거나 본질을 가리는 노래가 아니라, 너의 목소리로 훔쳐가도 좋은 노래라고.
광장이 K팝을 데려온 일에 대하여 생각한다. 같은 노래를 들으며 잠을 쫓고 출근을 하던 때도 있었다. 신나는 비트와 감각적인 문장 속에 숨은 힘을 찾아내어 삶의 유지보수에 보태려는 시도는 늘 자연스러웠다. 단지 이번엔 우리의 삶이 국회 앞에 적나라하게 달려 있었을 뿐이었다.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메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제 안녕.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울지 않게 나를 도와줘." 이제는 민중가요처럼 불리는 '다시 만난 세계'의 가사를 옮겨본다. 국위선양하는 문화적 산물인 동시에 오늘날을 바로잡는 동력이 될 노래들이 거리에 나와 있다. 다양한 색과 모양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 부른다. 사랑하던 습관대로.
“고개 숙이고 새해 첫 장례행렬을 따라가는 여인들의/경건하게 긴 목덜미에 내리는//눈의 흰 입술들처럼/그때 우리는 살아 있었다”('훔쳐가는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