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가슴께까지 쌓인 책을 두 팔로 껴안은 사람. '책을 지키는 사람'이란 이름의 조형물이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출판문화회관 입구에 세워졌습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군사독재 정권 당시 출판과 사상, 표현의 자유를 위해 헌신한 출판인, 작가, 번역가, 서점인, 제작자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12월 3일, 대통령이 비상계엄령 선포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던 터라, 조형물 아래에 적힌 '민주주의와 출판의 자유를 위하여 희생한 모든 이들을 기억하며'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읽힙니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언론사에서 출판 담당 기자로 일하다 보니 그날 밤, 저는 포고령 중에서도 유독 이 말이 머릿속에 박혔습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럼 당장 내일부터 회사는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계엄군이 기사를 검열하겠다는 건가. 온라인 단체 채팅방은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이 쏟아지는 덕에 쉼없이 울렸고요. 누군가는 이렇게 묻더군요. "이런 거 올리면 우리도 잡혀가는 거 아니야?"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한순간에 말살될 뻔한 순간을 목도하고 나니, 과거사가 허투루 들리지 않습니다. 이날 제막식에 참석한 인쇄소 영신사의 홍사희 대표 말이 특히 맴돕니다. 그는 1985년 풀빛 출판사의 고 나병식 대표의 부탁을 받고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최초의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제작했습니다. 홍 대표는 "사실 처음에는 '난 그 책 못 만들어' 하고 거절했었는데, 고민고민하다 수락을 했다"며 "'영신사 홍사희가 거절했다더라' 하는 말이 들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창피해질 것 같았다"고 회상했습니다. 홍 대표는 출간 다음 날 남대문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고, 나 대표는 구속됐습니다. 책 1만 권이 압수당하기도 했죠.
그런데 고초에도 책은 결국 살아남았습니다. '지하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알리는 기폭제가 됩니다. 12·3 불법계엄도 역사에 이리 기억되지 않을까요. '책을 불태우는 사람'은 결국 지게 된다고. '책을 지키는 사람'이, 민주주의가 끝내 승리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