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상관의 명령은 절대적입니다. 지휘관의 명령 한마디면 산도 옮길 수 있는 조직이 군이죠. 명령에 따른 임무 수행이 일상인 군인들에게 항명은 쉽게 떠올릴 수 없는 단어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12·3 불법 계엄을 주도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계엄 선포 직후 전군 주요지휘관에게 강조한 첫 번째 지시는 '항명하지 말라'였습니다. "책임은 장관이 질 테니 명령을 따르라. 그렇지 않으면 항명죄로 다스리겠다"는 겁니다. 모든 책임은 장관이 지겠다는 공허한 약속을 앞세워, 지휘관들이 자신의 지시에 대한 정당성을 따지지 못하도록 겁박하려는 의도였을 테죠. 군형법상 항명죄는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경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항명하지 말라'는 지시는 지휘 계통을 따라 실제 병력을 투입한 현장 지휘관들에게도 가장 먼저 전파됐을 겁니다. 군의 존재 목적인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든 말든 상관없었죠. 그리고 그들은 '계엄의 탈을 쓴 반란'에 가담하고 있다는 걸 판단하기도 전에, '항명'이라는 족쇄에 얽매였을 겁니다. 계엄 상황에서 항명의 처벌 규정은 1년 이상 7년 이하의 징역이지만, 반란 모의에 참여하거나 반란을 지휘하는 등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사람은 최대 사형까지 받게 됩니다.
김 전 장관의 의도대로 12·3 불법 계엄에서 고위 지휘관들의 항명은 없었습니다. 계엄사령관에 임명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법적 절차를 거쳤다'는 김 전 장관의 말 한마디에 자신의 이름이 박힌 불법 포고령을 발표해 버렸고, '충암파' 실세인 여인형 방첩사령관은 계엄 해제 이후에도 "맞든 틀리든 군인은 명령을 따라야 한다"며 뒤틀린 상명하복 정신을 당당하게 강조했습니다.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등은 '소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며 스스로를 변호하지만, 정의를 위해 항명을 했다고 볼 순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명예로운 항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상식과 인류애에 반하는 상관의 명령에 합리적 사고와 용기로 대응한 사례들입니다. 잠시 역사 속으로 함께 가보시죠.
1968년 3월 16일.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미 육군 헬기 조종사였던 휴 톰슨 주니어는 '미라이 학살' 당시 동료에게 미군을 향한 발포 명령을 내리면서까지 베트남 민간인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미라이 학살은 마을 주민들이 적 전투원을 돕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미군이 미라이 마을의 여성, 어린이, 노인을 포함한 베트남 민간인 수백 명을 학살한 사건입니다.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톰슨은 이 현장을 목격하고, 미군과 도망치는 민간인 사이에 헬기를 착륙시켜 스스로 사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심지어 민간인을 계속 공격하는 미군에게 발포하라는 명령까지 내렸습니다. 톰슨이 직접 민간인 사살 임무를 받은 건 아니지만, 적을 돕는 민간인을 사살하라는 상부의 명령에 정면으로 맞선 것은 명백합니다. 톰슨은 헬기와 다른 항공기를 동원해 살아남은 민간인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군 최악의 베트남전 학살 사건으로 기록되는 미라이 학살에서 톰슨의 '명예로운 항명'은 참다운 군인 정신에 대한 희망을 보여줬습니다. 미라이 학살을 증언한 톰슨과 동료들은 살해 위협까지 받을 정도로 조직 내에서 배척됐지만, 30년 후인 1998년 도덕성과 용기를 인정 받아 '군인 훈장'을 받았습니다. 훈장 수여식에서 마이클 애커만 장군은 "모든 군인들이 따라야 할 본보기"라고 평했고, 맥스 클렐랜드 상원 의원은 "진정한 애국심의 확실한 예"라고 칭송했습니다.
지휘관으로서의 판단으로 핵 전쟁을 막은 사례도 있습니다.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구 소련 잠수함 B-59의 부함장으로 근무하던 바실리 아르키포프는, 자신들을 공격하는 미 해군을 향해 핵어뢰를 발사하기로 결정한 함장의 명령에 맞섰습니다. 핵 공격을 승인하려면 선내 고위 장교 3명의 동의가 필요했지만, 부함장인 아르키포프의 반대로 핵 공격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자칫 미국과 소련 간에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자신의 생존마저 장담할 수 없었던 아르키포프는 침착하게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연락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결과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죠. 경직된 군대의 위계질서 속에서 개인의 용기와 윤리적 의사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비록 자신이 살기 위한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인류를 위한 '항명'이 됨으로써 면죄부를 받은 전범도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종전을 1년 앞둔 1944년 8월. 나치의 보병대장인 디트리히 폰 콜티츠는 프랑스의 군정장관으로 발령받았습니다. 패망 위기를 앞둔 나치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콜티츠에게 "파리의 잿더미 외에는 적의 수중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며 파리 파괴를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콜티츠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라고 집요하게 묻는 히틀러를 외면하고 항복을 선택했죠. 콜티츠는 분명 유대인 학살에 적극 가담한 전범입니다. 하지만 생애 단 한 번, 히틀러의 마지막 명령에 불복종하면서 '파리의 구원자'라는 평가를 듣게 됐습니다. 콜티츠는 전범으로 기록됐지만, 파리를 지킨 공로를 인정받아 면죄됐습니다. 그가 전범이면서도 구원자라는 이중적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건 상관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닌, 현실을 직시한 항명에서 비롯된 것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시 2024년 12월의 대한민국을 바라봅니다. 군 지휘관들은 헌법에 반해 국회를 무력화하고,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관장하는 헌법기관을 장악하라는 불법적인 명령을 받고도 병력을 출동시켰습니다. 강제로 국회에 진입했고, 선관위 서버 확보를 시도했습니다. 왜 12·3 불법 계엄에선 '명예로운 항명'은 찾을 수 없고 '뒤틀린 상명하복'만이 가득했을까요?
문제는 △실세에게 쏠린 인사권 △말 잘 듣는 군인이 승진하는 '정치 군인화' △충성과 복종을 강조하는 군 정신교육으로 요약됩니다.
김 전 장관은 자신과 학연, 근무연으로 얽힌 이들에게 승진을 미끼로 복종을 강요했고, 정보사령관을 지냈던 민간인 노상원 역시 김 전 장관의 권세를 등에 업고 진급을 시켜주겠다며 현역들을 자기 사람처럼 부렸습니다. 비단 현 정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군이 정치의 도구가 되면서 대다수의 지휘관들은 '끓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시나브로 군인정신은 실종되고, 출세욕만 남았습니다.
한 전직 장군 A씨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페이스북 글에서, 계엄 주요 가담자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얼마나 정치적인 인물인지 적나라하게 폭로했습니다. 그는 "박 총장의 온화하고 예의바른 태도를 좋아한다"면서도 "작년 말 부대 표창 수여식에서 박 총장은 야전부대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교육훈련 표창 대신 당시 신원식 장관이 강조하던 정신전력 우수부대만 직접 치하하는 모습을 보고 적지 않게 실망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육군의 정체성을 저버리고 장관의 장단에 맞추는 사람이 세계 6위 국방력을 갖춘 대한민국의 육군 수장이라는 점이 몹시도 안타까웠을 겁니다. 그는 이어 "박 총장의 입에서 육군의 미래인 '아미타이거(인공지능과 드론봇을 활용한 육군의 미래형 전투체계 시범부대)'에 대한 언급은 들어보지 못했고, 야전부대에서는 군가경연대회가 이어지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박 총장은 장관이 지시하면 죽는 시늉도 할 사람"이라는 얘기가 들려왔다고 전하기도 했죠.
비단 박 총장만의 얘기는 아닐 것입니다. 현 정권은 왜 군인들의 정신전력을 그토록 강조했던 걸까요? 말 그대로 '충성'을 왜곡해 '알아서 기는' 부하들을 육성하려 했던 건 아닐까요? A씨는 "육군은 오래전부터 개인의 주체적 판단력에 대한 신뢰를 기본 전제로 하는 '임무형 지휘'를 지휘철학으로 가르쳐왔다"며 "적법하지 않은 명령은 거부해야 한다고 배워왔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국방부가 발간한 군 정신전력 기본 교재에서 이 같은 내용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군인정신을 서술한 부분에선 군 조직의 특수성에 따라 △임무 완수가 최우선 △상명하복의 위계적 질서 유지 △단결과 협동을 중시하는 운명공동체 △엄정한 군 기강과 규율 중시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군인의 의무 중에서도 충성, 명령과 복종은 '정치적 중립'보다 우선시됩니다.
우리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만 여겼던 비상계엄을 현실에서 목도했습니다. 그리고 계엄 의혹이 불거졌을 때 '부당한 명령엔 따르지 않을 것'이라던 일부 젊은 장교들의 외침이 모든 군인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 오히려 다수의 지휘관들은 지시의 정당성보다 상관의 명령을 거스르지 않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날의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와 피해자를 판가름하는 작업과 더불어 군이 건강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근본적인 개혁에 착수해야 할 것입니다. 정치 군인을 양산하는 구조를 타파하고, 깜깜이 장성 인사를 투명하게 바꿔야 할 것입니다. 육군사관학교의 부작용에 대한 논의가 심도 있게 이뤄져야 하며, 군에 대한 말뿐인 문민통제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논의돼야 합니다. 이 틈바구니 속에서도 자신의 출세 여부를 타진하는 군인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위기는 곧 기회입니다. 개인이 아닌 조직이 되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길 간곡히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