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결제 받아놓고 먹튀?"… 억울하게 '블랙리스트' 찍힌 소상공인들

입력
2024.12.18 04:30
"제품 남았는데 왜 안 주냐" 일부 매장 향한 비판
점주들에 확인하니 시행착오·소통 오류 등 오해
"불분명 정보 확산으로 피해 생겨선 안 돼" 지적

"선결제 받아놓고 당일 소진 안 되면 폐기한다는 건 '먹튀' 아닌가요?"

여의도에서 대통령 퇴진 집회가 연이어 열린 가운데 주목받은 미담 중 하나가 '릴레이 선결제' 기부다. 집회 참가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다량의 음료나 식사를 미리 결제하는 방식으로 유명 가수, 배우들도 동참했다. 그러나 최근 때아닌 '먹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일부 매장이 선결제된 식음료를 당일만 제공하거나, 원활하게 배부하지 않았다는 경험담이 공유된 것이다. 한국일보가 이른바 '블랙리스트'로 지목된 매장들에 직접 확인해보니 사실 관계가 다른 경우가 적잖았다. 불분명한 정보로 쉽게 낙인찍는 '마녀사냥식' 비난은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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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21613540000466)

17일 한국일보 취재 등에 따르면 전날부터 엑스(X·옛 트위터)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선결제를 받은 일부 업장에 대한 비판글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당일 폐기' 조건으로 주문을 받은 매장이 이해되지 않는다거나, 불친절함을 폭로하는 내용 등이 주를 이뤘다. 사장 재량으로 물품을 추가 제공하는 등 이른바 '화이트리스트'와 반대되는 개념의 '블랙리스트' 매장을 나눈 지도까지 떠돌았다.

'블랙리스트'로 거론된 점주들과 접촉해보니 대부분 단순 시행착오이거나 소통 오류에서 비롯된 오해였다.

주문받은 음료 30잔을 미리 제조해뒀다가 소진되지 않아 폐기했다는 원성을 들은 카페 점주 A씨는 '선결제 문화'를 잘 모르는 경우였다. 그는 "선결제는 단체주문만 받아 봐 그런 건 줄 알아서 (제조 시간을 감안해) 20분 뒤부터 수령이 가능하다고 안내드렸다"며 "이런 시스템(불특정 다수를 위한 주문)이라는 건 뉴스를 보고 처음 알았다"고 털어놨다. 실제 이곳은 집회 장소로 주로 이용된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에서 700m가량 떨어진 '오피스 상권'이다. "선결제 고객을 차별했다"고 손가락질 받은 디저트 가게 운영자 B씨는 "(선결제 주문된) 종류의 쿠키는 다 소진됐다'는 취지로 다 나가서 굽고 있다고 했는데 다른 종류의 쿠키를 보고 '(남았는데) 차별한다'는 글이 올라왔다"고 했다. B씨에겐 쿠키를 미리 만들어 놓지 않아 대기 시간이 길어졌다는 불평도 쏟아졌다. B씨는 제품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거라며 "굽는 시간이 걸려 즉석에서 바로 만들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밥·만두 가게를 운영하는 C씨는 '당일 미소진 시 폐기' 조건을 내걸었다가 뭇매를 맞았다. C씨는 "주문 수량대로 포장한 뒤 후원자 이름을 다 적어놨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 헷갈리고 관리가 안 됐던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선결제분은 모두 소진돼 실제 폐기된 김밥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소진되지 않은 품목에 대해서도 대부분 환불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B씨는 "수량이 남은 주문자 중 연락이 닿으시는 분은 모두 환불해 드렸고, 나머지는 직접 수소문 중"이라고 전했다. 소비자보호원으로부터 연락까지 받은 A씨는 "소비자보호원 담당자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상담사님도 사장님이 (환불 여부를) 결정하라고 하더라"며 "저는 좋은 뜻으로 (선결제) 하신 거니까 환불해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고 했다.

'선결제 문화'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종의 해프닝으로 볼 수 있지만 잘못된 정보 확산으로 부당하게 피해를 입는 소상공인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 일부 매장은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별점 1점을 잇달아 받는 '별점 테러'에 시달렸다. 난데없이 '별점 테러'를 받은 한 매장 점주는 "종일 애쓴 직원들이 너무 속상해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선결제 매장 지도를 개발한 '시위도 밥먹고' 측도 "별점 테러 등이 가게와 인근 상권에 피해를 끼칠 수도 있어 매우 조심스럽다"고 우려했다. 시위도 밥먹고에 따르면 최근 약 2주간 여의도 일대에서 집회 전후로 선결제가 이뤄진 매장은 총 198곳, 물품은 5만4,299개에 이른다.

김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