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취임 직후 고율 관세 폭탄 투하를 예고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유럽연합(EU)이 흔들리고 있다. EU의 두 축 독일과 프랑스 모두 사실상 정치 공백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연방의회에서 불신임당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잇따른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EU가 당분간 구심점을 찾아 미국에 대응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숄츠 총리의 의회 신임 투표 패배로 독일 정부가 붕괴하면서 유럽 전역의 리더십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이날 독일 의회는 숄츠 총리 신임안을 찬성 207표, 반대 394표, 기권 116표로 부결시켰다. 내년 초 실시될 조기 총선 전까지는 사실상 새로운 정책 수립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NYT는 "독일의 정치적 불확실성은 한 달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내년 4, 5월쯤 각 정당이 연정에 합의하기 전까지 새로운 정부가 구성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불안정한 정치 상황은 프랑스 또한 마찬가지다. 마크롱 대통령은 1년 새 네 번째 총리로 프랑수아 바이루를 지명했지만 사임 압력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여야 대치는 장기화하고 있다. 유럽 싱크탱크인 유럽외교협의회(ECFR) 야나 푸글리어린 선임연구원은 "EU의 전통적인 엔진 역할을 했던 독일과 프랑스는 자국 내 문제로 바쁘다"며 "여러 위기가 EU를 동시에 강타하고 있는 와중이라 최악의 시점"이라고 NYT에 말했다.
EU의 정치적 혼란 상황은 트럼프 1기 행정부와 맞섰던 2017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당시 EU에는 '개혁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던 마크롱 대통령과 독일의 최장수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이 있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유럽의 결정자'인 메르켈 총리가 당시 트럼프 정부와 맞붙었지만 오늘날 유럽에는 견제 세력으로 활약할 만한 지도자가 없다"며 "유럽이 과거보다 트럼프를 대할 준비가 덜 됐다는 점을 그들(EU)도 인정한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당선자가 지난달 당선 이후 연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 관세 인상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지만 EU는 제대로 된 견제를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 최근 유럽 경제 상황도 도움이 안 된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악화하면서 '보복관세'로 트럼프에게 맞불을 놓았던 과거와 같은 방식의 대응도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이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로존 20개국의 체감경기를 반영하는 함부르크 상업은행(HCOB)의 조사에서12월 종합구매관리자지수가 전달 대비 소폭 상승한 49.5로, 유로존 회원국 민간 부문 활동이 여전히 둔화돼 있다고 보도했다. 사이러스 드 라 루비아 HCO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 전체에서 제조업 부문의 상황은 여전히 매우 심각하다"며 "가장 중요한 두 회원국인 프랑스와 독일의 지속적인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문제가 더욱 가중됐다"고 WSJ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