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 출신이라 기밀? 알고 보니 성별 빼고 다 거짓... 법원, "혼인취소"

입력
2024.12.17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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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온라인 게임 통해 만나 실제 결혼
이름·나이·이혼·자녀 유무 등 모두 거짓말
명의 도용해 대출받고 상습 폭행 일삼아
法 "적극적인 거짓말로 피해자 기망한 것"

여성 A(36)씨는 2021년 초 휴대폰 모바일 게임을 통해 B(51)씨를 알게 됐다. 서로 관심사도 비슷했고 게임을 즐기며 호감을 갖게 된 두 사람은 실제 만남을 가진 지 두 달여 만에 교제를 시작했다.

그런데 B씨는 자신을 정보사령부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소개하며 얼굴이 절대 노출돼서도 안 되고, 본인 명의의 통장도 개설할 수 없다고 했다. 개인적인 질문에는 "모든 것이 기밀"이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B씨의 태도가 수상했지만 사정을 잘 몰랐던 A씨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비밀인 B씨와의 만남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2022년 11월 B씨는 A씨 명의를 도용해 휴대폰을 개통하고, 통장을 개설해 대출받아 채무까지 부담하도록 했다. B씨는 수시로 폭행까지 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A씨가 B씨와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무렵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지난해 6월, A씨가 우연히 B씨의 휴대폰과 연동된 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진을 발견하면서 정보사령부 출신이라던 군대 이력에다 이혼 전력, 자녀 유무, 가족관계 등 모든 것이 거짓말임을 깨달았다. 심지어 이름과 나이까지 속였다. 격분한 A씨는 그 길로 출산한 아들을 데리고 친정집으로 갔고, B씨를 폭행과 사문서위조 등으로 고소하는 한편 혼인취소 소송도 제기했다.

그러나 B씨에게 반성은 없었다. 형사 고소를 하자 B씨는 잠적했고 지명 수배돼 구속까지 됐다. B씨는 법정에 출석해서도 "A씨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워 낳은 자식"이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친자 확인 절차 등 재판이 장기간 지연되기도 했다.

대구가정법원 경주지원은 지난 10월 "피고는 적극적인 거짓말로 원고를 기망했고, 이런 사정은 사회 통념상 혼인의사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고려 요소"라며 "원고가 이 같은 사실을 알았다면 피고와 혼인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혼인 취소를 결정했다. 또 친권자와 양육권자를 A씨로 지정했다. 대구지법 경주지원도 올해 2월 형사 고소 건에 대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B씨는 현재 아들의 '성과 본 변경허가' 심판 청구도 진행하고 있다.

A씨를 대리해 소송을 진행한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유현경 변호사는 "피해자가 겪는 심적 고통과 신분관계에서 오는 불이익, 재산상 손해 등 피해가 막심하다"며 "사기결혼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며, 피해 회복을 위해서는 혼인취소 및 형사고소 등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천=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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