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이 없는 거리

입력
2024.12.17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계엄 선포 이래 서울 여의도 앞 거리 집회에 많은 사람이 모였지만 온라인 세상 한편에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인터넷 방송인은 '계엄 농담'을 소재로 한 유튜브 영상에 웃는 썸네일(표지 이미지)을 올렸다가 지적을 받고 교체했다. 그나마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보는 유튜브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소수의 팬들 앞에서 진행되는 생방송 형태의 플랫폼에선 지금도 게임이 잘 안 풀리면 "계엄을 발령해야 한다"는 농담이 심심찮게 나오고 딱히 제지도 없다.

이런 정도까지 문제 삼는 건 어떤 면에선 사치스럽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아예 계엄령이 왜 문제인지 이해하지 못하거나 못하는 척한다. 대통령의 '어리석은 계엄'으로 농담하는 이들 중에는 대통령이 '철저하고 치밀하지 못했다'고 탓하는 이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부정선거 의혹'을 제대로 규명한다면 여론은 반전될 거라 믿었고 일부는 지금도 믿고 있다. 아마 대통령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일 터다.

혹자는 집회 현장에 젊은 여성은 보이는데 젊은 남성은 안 보인다며 '이대남'이란 신조어를 들이밀어 현상을 분석하려 했지만 실제 탄핵 집회를 조롱하는 이들 중엔 나이 든 이도 있고 여성도 있다. 물론 인터넷 공간에서 이들은 대체로 젊은 남성인 척하는데, 그게 인터넷 세상의 '표준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겉으론 평등하고 평평해 보이는 인터넷은 사실 몹시도 젠더화(化)한 공간이다.

한 국회의원이 탄핵 전날 짚었듯 '극우 유튜브 채널'을 원인으로 보고 빅테크의 선호 알고리즘 위주 큐레이션을 탓하는 것도 사실 문제의 절반만 본 것이다. 이들의 사고방식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네이버 카페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에브리타임과 디시인사이드 같은 초거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형성되곤 한다. 어떤 이들은 능동적으로 이런 커뮤니티를 찾아 자기 확신을 굳힌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들은 거리에 나오지 않거나 나오더라도 속내를 숨긴다는 것이다. 인터넷 세상에선 거리에 나온 이들을 공공연히 조롱하고 모욕한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오로지 그들만이 먼 미래를 아는 능력이 있는 현자이기 때문이다. 남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는 생존의 논리가 최우선이기에 더 나은 사회와 공공선을 위해 연대하고 노력하는 것은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그들이 거리에 없었던 덕분일까, 오늘의 거리는 예전과 다르게 사려 깊었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이주노동자와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말자"는 공지가 여의도에 현수막으로 내걸렸다. 평소라면 그렇지 않았을 법한 참가자들이 노동자와 여성주의자와 장애인 이동권 운동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비록 마음속에 다른 생각이 있을지라도 차별과 혐오의 목소리는 금방 잦아들곤 했다.

집회는 자리를 바꿔 계속되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다시 인터넷 공간으로 돌아갈 것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등장하기 전부터 모두가 뇌의 한 자리를 인터넷에 열어 두고 살아가고 있다. 어두운 본심을 드러내는 인터넷 공간을 통해 차별과 혐오는 다시 많은 이들의 뇌 한구석에 자리할 것이다. 그럼에도 거리에서 서로가 더 나은 사회를 믿고 움직였던 시간을 좀 더 믿어보려 한다.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게 한 것 또한 인터넷이기 때문이다.

인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