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가 유리구두를 신게 된 사연

입력
2024.12.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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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샤를 페로의 유리구두


옛 동화들이 대개 그렇듯이 프랑스 동화작가 샤를 페로(1628~1703)의 ‘신데렐라’도 고대부터 세계 여러 문명권에서 전해진, 운명적 정의와 보상에 대한 서사의 변형이다. 이집트 제26왕조 시대의 ‘로도피스(Rhodopis)’ 이야기는 알려진 바 신데렐라의 원형 서사다. 파라오의 성대한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채 강가에서 빨래를 하던 밝은 피부색의 외국인 노예 로도피스를 가엽게 여긴 신 호루스가 매로 변신해 그녀의 슬리퍼를 훔친 뒤 파라오의 무릎 위에 떨어뜨렸고 그걸 신의 계시라 판단한 파라오가 어렵사리 슬리퍼의 주인인 로도피스를 찾아내 결혼했다는 이야기.

유사한 이야기들이 중국과 이탈리아 민담에도 있다. 페로는 저 유명하고도 상징적인 ‘유리구두’를 요정의 선물로 곁들였다. 유리구두를 신고 춤을 추던 신데렐라는 요정과 약속한 자정에 맞춰 서둘러 파티장을 빠져나오다 구두를 잃어버리지만, 그 구두 덕에 왕자와 맺어진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유리구두의 상징적 의미를 두고 여러 해석이 존재한다. 유리의 투명한 물성으로 인격적 고결함과 순결함을 드러내려 했다는 설, 발 사이즈를 정확히 측정해야 하는 서사의 설정상 신축성이 없는 재질이어야 했다는 설, 진귀한 소재였던 유리를 통해 신데렐라가 누린 하룻밤의 영화와 그 취약성을 은유하려 했으리라는 설 등등.

아일랜드 에든버러대 미술사학자 제너비브 워릭(Genevieve Warwick)은 2022년 12월 18일 옵서버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해석을 보탰다. 루이 14세는 베르사유궁에 거울 전당을 지을 만큼 유리를 좋아했고, 또 신발광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변호사 출신으로 루이 14세의 궁전 장식 담당관으로 일한 페로는 당시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수입하던 유리의 국산화를 위한 공장 건설·운영에도 관여한 인물이었다. 워릭에게 유리구두와 신데렐라의 영광은 17세기 프랑스 유리 국산화와 경제 애국주의의 상징이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