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트럼프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주(州)에 사는 제라드 사렉(66)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취임을 앞두고 2010년에 샀던 자가용을 4만4,000달러(약 6,300만 원)짜리 2023년형 도요타 RAV4 하이브리드로 바꿨다. 그는 원래 바퀴가 떨어질 정도로 고장 나지 않는 한 차를 바꿀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트럼프 등장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사렉은 최근에는 20년 넘은 세탁기와 건조기도 2,300달러(약 330만 원)를 들여 새 제품으로 교체했다. 주말에는 아내와 함께 대형마트를 방문해 커피나 휴지, 올리브유 등 생필품을 대량 구매하고 있다. 그는 "트럼프의 이민자 추방 계획이 노동 비용을 증가시켜 국내 상품 가격이 상승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말했다.
14일(현지시간) WSJ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자 취임이 다가오면서 미국 내에서 수입품 관세 부과 전 필요한 제품을 미리 사두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고율 관세 정책에 따라올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대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에 사는 티아 흐루발라(25)는 최근 자동차 배터리를 교체하는 데 293달러(약 42만 원)를 지출했다. 그는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한 달 더 기다리는 대신 바로 교체를 결정한 것"이라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고 WSJ에 전했다.
이날 미시간대 소비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5%는 '내년에 가격 인상이 예상돼 지금이 주요 물품을 구매하기에 적기'라고 답했다. 지난달 조사(10%) 때보다 크게 증가한 수치다. 지난달 말 신용카드 및 금융 관련 정보 공유 웹사이트 크레디트카드닷컴의 설문조사 결과 미국 거주자 2,000명 중 34%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확실성 때문에 생필품을 비축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보도했다. 응답자 10명 중 3명은 올해 쇼핑 기간에 평소보다 더 많은 상품을 구매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기업들도 수입품을 미리 구매해놓거나 소비자들에게 가격이 오르기 전 구매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데이비드 레이티 월마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19일 CNBC방송 인터뷰에서 "제품 가격을 절대 인상하고 싶지 않으나 아마도 소비자 가격 인상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베스트바이, 로위스, 오토존 등 유통업체 경영진들 또한 관세로 인해 가격이 오를 가능성을 언급했다.
문제는 관세 부과를 우려한 이른 '사재기 열풍'이 미국 내 인플레이션 압력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인플레이션이 이미 시작된 것처럼 소비를 늘리면서 실제로 물가 상승을 촉진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로버트 바베라 존스홉킨스대 금융경제센터 소장은 "사람들은 '앞으로 12개월 내 TV를 사겠다'고 했다가 '12주 내로 사야 할 것 같다'로 판단을 바꿀 수 있다"고 WSJ에 말했다. 해리슨 홍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만약 구매가 대규모로 이뤄지고 물품 부족이 심각하다면 소매업체는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