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14일 내란죄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윤 대통령이 3일 밤 비상계엄 선포로 대한민국을 누란 위기로 내몬 지 열하루 만이다. 탄핵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200석)를 넘는 찬성으로 가결됐다. 범야권 192인에 국민의힘 12인이 가세해 찬성 204표, 반대 85표로 통과했다. 기권은 3표, 무효는 8표였다. 이제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을 받게 되고, 결정이 나올 때까지 한덕수 대통령권한대행 체제로 국정이 운영된다. 7일 표결에 불참해 탄핵안을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시켰던 여당 의원들이 늦게라도 '직무를 양심에 따라 수행하라'는 헌법에 충실했던 건 다행이다. 일단 윤 대통령 직무정지로 헌정질서 회복의 길이 열렸다.
대통령 탄핵은 그 자체로 불행한 사태다. 하지만 위헌적 불법 계엄을 시도해 국가를 위기에 빠뜨린 윤 대통령은 반성과 참회 없이 끝까지 계엄 정당성을 강변했다. 12·3 불법계엄 사태 나흘째인 7일 처음 내놓은 2분짜리 대국민담화에서 “비상계엄 선포는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절박함에서 비롯됐다”고 변명했다.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것이 ‘정당한 권한 행사’라는 인식이다. “임기 문제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당에 일임하겠다”고 했지만 닷새 만에 말을 뒤집었다.
윤 대통령은 계엄이 야당에 대한 “경고용”이라고 거듭 주장한다.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딨냐”, "계엄은 고도의 통치행위"라는 논리로 내란 혐의를 벗으려 하는 건 그간의 대법원 판례에 비춰 볼 때도 어불성설이다. 국가적 혼란과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하고도 이젠 살 궁리만 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윤 대통령이 국헌문란(강압에 의해 헌법기관의 권능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 목적의 폭동을 일으킨 내란 수괴라는 물증과 증언은 차고 넘친다. 비상계엄 선포 3시간 전 경찰 수뇌부를 안가로 불러 체포자 명단 등이 담긴 계엄조치사항 문건을 직접 전달한 사실이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수사로 밝혀졌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 14명이 최우선 체포 대상이었다. 계엄 당시 국회 본청에 투입된 군 병력을 지휘한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겐 “의결 정족수가 아직 다 안 채워진 것 같다.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 안에 있는 인원을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막기 위한 치밀한 준비가 있었음을 뒷받침한다.
이제 신속한 탄핵 심판과 수사는 극단적 혐오와 분열로 찢긴 대한민국 공동체를 복원하는 길이다. 윤 대통령은 12일 담화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온갖 음모론으로 채워진 7,000자 분량 담화는 “내가 나를 직접 변호하겠다. 변론 요지서 한번 써보겠다”며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영 갈등을 일으켜 정치적 활로를 찾겠다는 오기도 엿보인다. 오늘도 서울 여의도와 광화문에서 각각 100만 명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진 탄핵 찬반 집회가 열렸다. 전 세계가 ‘윤 대통령이 대한민국 최대 리스크’라고 우려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국민 분열은 안 될 일이다.
국회는 경제는 물론 국방 외교 등 어디도 성한 곳이 없는 국가적 위기 극복에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탄핵 가결로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정파적 이해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 앞서 비상계엄 조기 해제는 국민의힘 친한계 의원들의 동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국민 모두가 지켜봤다. 결원된 헌법재판관 임명부터 서둘러 ‘6인 체제’로 파행 운영 중인 헌재를 정상화해야 한다.
정국 주도권을 쥐고 있는 제1 야당 민주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친명 강경파를 중심으로 계엄을 막지 못한 한덕수 국무총리를 탄핵하고 거국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국가 정상화를 위해 최선인지 따져봐야 한다. 당장은 국회가 한덕수 대통령권한대행체제와 긴밀히 협력해 혼란을 최소화하고 국정을 안정화하는 게 우선이다. 윤석열 정권 실패에 책임이 큰 국민의힘은 반성은커녕 탄핵 반대 당론을 고집하며 정국 혼란을 가중시켰다. 친윤계는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물러나고, 이제라도 집권여당답게 책임 있는 자세로 국가 위기 극복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