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구글이 함께 개발해 온 확장현실(XR) 헤드셋이 내년에 나온다. 애플이 지난 2월 혼합현실 헤드셋 '비전프로'를 출시한 지 거의 1년 만이다. 이른바 '삼성·구글 진영'의 가세는 잠잠했던 XR 헤드셋 시장 경쟁에 불을 지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전히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꼽히는 XR 헤드셋의 대중화도 본격적으로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전자와 구글은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구글 캠퍼스에서 두 회사가 함께 만든 XR 기기를 내년 중 출시하겠다고 발표하며 이를 구동할 전용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 XR'을 공개했다. XR은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혼합현실을 아우르는 용어로, 가상공간에서 몰입형 경험을 제공하는 기술을 일컫는다. 앞서 삼성전자와 구글은 지난해 2월 삼성전자 신제품 공개 행사에서 XR 기술 개발 협력 중임을 깜짝 공개했는데, 그로부터 약 2년 만에 그 결과물이 베일을 벗은 셈이다.
삼성전자와 구글은 스마트폰 부문에서 오랜 기간 협력해 온 검증된 파트너다. 삼성전자가 하드웨어를 만들고, 구글이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형태의 협업으로 애플과 함께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두 회사는 안드로이드 XR이 일상생활에서 현실과 가상세계를 넘나드는 듯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드로이드 XR 기반 기기를 착용하면 휴대폰을 꺼내지 않고 지도나 번역, 메시지 요약 같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길을 걸어갈 때 목적지로 향하는 지도가 시야 아래쪽에 보여지고, 해외에서 외국어로 적힌 메뉴판을 보면 한국어 해석이 즉각 나란히 표시되는 식이다. 기기 제어는 인공지능(AI) 비서 '제미나이'와의 음성 대화를 통해 가능하다.
내년 중 출시될 안드로이드 XR 기반의 첫 번째 기기는 헤드셋이다. 구글과 삼성전자는 이 기기를 '프로젝트 무한'이라는 코드명으로 부르고 있다고 이날 소개했다. XR 기기는 크게 눈을 완전히 뒤덮는 고글 형태의 헤드셋과 안경 모양의 글래스로 나뉘는데, 이 중 기술적 완성도가 더 높은 헤드셋을 먼저 출시하겠다는 게 양사의 계획이다. 테크업계에서는 이르면 내년 1월 열리는 삼성전자 신제품 공개 행사에서 프로젝트 무한이 처음 공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XR 시장에서는 메타와 애플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가격, 착용상 불편함, 즐길 수 있는 콘텐츠 부족 등 한계 때문에 대중화 속도가 더딘 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XR 시장은 아직 본격적으로 활성화하지 않았다"고 진단하며 "애플 비전프로 헤드셋의 경우 무거운 중량과 비싼 가격(한국 출고가 최저 499만 원) 탓에 한정된 이용자층에서만 인기를 얻고 있고, 메타는 고급형 혼합현실 기기보다는 스마트 안경과 저가형 헤드셋에서만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삼성전자와 구글은 후발주자지만, 늦은 참전이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다. 애플과 메타의 기기들이 가진 단점을 보완한 제품을 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삼성전자는 애플 비전프로에 비해 프로젝트 무한의 무게가 더 가볍고 착용감이 개선됐다고 강조한다"며 "가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비전프로보다는 저렴하게 책정될 것임을 시사했다"고 전했다.
삼성·구글 진영은 프로젝트 무한 출시와 동시에 XR 시장에서 메타, 애플과 '3강 구도'를 형성할 공산이 크다. 양사는 프로젝트 무한을 시작으로 안드로이드 XR 기반의 기기들을 계속 선보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블룸버그는 "이미 스마트폰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삼성전자와 구글의 협력이 혼합현실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