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야당은 대한민국의 성장동력까지 꺼트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삭감한 내년 예산 내역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일 긴급 대국민담화를 통해 자신이 초래한 '12·3 불법계엄 사태'의 책임을 야당에 돌리며 이같이 말했다. 담화문에는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감액해 본회의를 통과한 예산안을 비판하는 내용이 비중 있게 담겼다. 민주당의 '예산 폭거'가 행정과 사법의 정상적 수행을 어렵게 몰아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주장이다. 실제 그러한지 살펴봤다.
윤 대통령은 이날 담화에서 "검찰과 경찰의 내년도 특정업무경비, 특수활동비 예산은 아예 0원으로 깎아놓고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국회 예산은 오히려 늘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이번 예산은 증액 자체가 0원이었던 ‘감액’ 예산이다. 다만 다른 사정기관과 다르게 국회 예산 중 특활비 9억8,000만 원과 특경비 185억 원은 깎이지 않았을 뿐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민주당 간사인 허영 의원은 라디오에서 "국회 특활비 역시 원래 100억 원대였는데, 국민의힘 소속 홍준표 대구시장이 과거 이를 아내에게 생활비로 줬다고 밝혀 논란이 된 이후 90% 가까이 삭감된 상태"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원전 생태계 지원 예산을 삭감하고, 체코 원전 수출 지원 예산은 무려 90%를 깎아 버렸다"며 정부 주요 정책 예산을 야당이 깎아 발목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원전 예산 중 삭감된 건 없고 증액된 정부안 그대로 통과됐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원전 생태계 금융지원 사업(1,500억 원), 소형모듈원자로(SMR) 제작 지원센터 구축사업(54억 원), 원전 안전운영을 위한 핵심소재부품장비 국산화 기술개발(R&D·63억 원), 원전산업수출기반 구축(116억 원) 등이 한 푼 삭감 없이 정부안대로 통과됐다. 다만 동해 심해 가스전 시추 ‘대왕고래 프로젝트’ 예산은 정부안 506억 원에서 497억 원이 도려내진 것은 맞다.
윤 대통령은 "청년 일자리 지원 사업, 취약계층 아동 자산 형성 지원 사업, 아이들 돌봄 수당까지 손을 댔다"고 분노했는데, '손을 댔다'는 부분은 맞다. 실제 취약계층 아동의 사회 진출 시 자산형성을 지원하기 위한 ‘아동발달지원계좌’ 사업의 경우 정부는 1,531억8,900만 원을 편성했는데, 예결위 심의에서 21억4,800만 원이 깎였다. 청년 일 경험 지원 등을 위한 정부 예산 2,141억 원 가운데 46억 원이 감액됐다. 청년취업정착패키지(75억 원), 국민취업자리 빈자리 매칭지원(228억 원), 청년일자리 강소기업 선정 및 육성패키지(8억 원) 등에서도 15억 원이 줄었다. 아이 돌보미 지원 사업은 애초 정부안보다 384억 원이 깎인 4,808억7,300만 원이 편성됐다.
통상 예산은 국회 심의에서 집행률과 성과에 따라 삭감되거나 증액된다. 이들 예산이 삭감된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 예결위에서 저조한 집행률 등을 고려한 결과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세 사업 모두 여야가 감액에 합의했고 정부도 이를 수용해 '손을 댄' 사업들이라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이 사업들의 예산은 조금 삭감된 수준이라 집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귀띔했다.
윤 대통령은 "재해 대책 예비비를 무려 1조 원을 삭감했다"고도 비판했다. 이는 전체 맥락 중 한 부분만 발췌한 것이다. 정부는 애초 내년도 예산안에서 예비비를 크게 증액해 편성했다. 기획재정부는 ‘건전재정’ 명목으로 내년 전체 예산을 올해 대비 3.2%만 늘렸는데, 예비비는 무려 14.3% 늘린 4조8,000억 원(일반예비비 2조2,000억 원·목적예비비 2조6,000억 원)을 편성했다. 야당이 삭감한 것은 일반 예비비 중 8,000억 원과, 목적 예비비 중 1조 원이다. 국회 예결위 관계자는 "지난해 예비비는 2조2,000억 원 편성됐는데 집행률이 28.5%밖에 되지 않아 대폭 삭감 대상"이라며 "특히 윤 대통령은 정부 비상금인 예비비를 대통령실 이전과 순방 비용을 위해 써왔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내년도 예산에 대한 국회예산정책처의 심사보고서에는 "재해대책비 관련 예산안이 개별 부처에도 9,000억 원 가까이 편성돼 있다"며 "예비비 증액 규모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