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운전에 계엄까지 덮쳤는데... 시련 뚫고 '소방관'이 웃는다

입력
2024.12.1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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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악재 불구 11일 관객 100만명 돌파
주말 좌석 판매율 40%대로 이례적 수치
"119원 기부 마케팅 등 2030 마음 잡아"

코로나19가 대유행하던 2020년 5~8월 촬영했다. 스태프와 배우는 방역 규정을 지키며 촬영하느라 애를 먹었다. 감염병 유행이 지속돼 언제 개봉할 수 있을지 안갯속이었다. 코로나19가 사그라지던 2022년 9월 주연을 맡은 배우 곽도원이 음주 운전을 하다 적발됐다. 개봉은 무기 연기됐다. 지난 4일에야 극장가에 첫선을 보였다. 하필 불법 비상계엄이 전국을 강타한 직후다.

‘창고 영화’ 설움 딛고 흥행 이변

영화 ‘소방관’은 기구하고도 기구한 과정을 거쳐 개봉했다. 대형 악재에 발목을 잇달아 잡혔음에도 11일 기준 누적 관객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 한국 영화가 100만 명을 극장에 모은 것은 ‘베테랑2’(9월 13일 개봉 752만 명) 이후 처음이다. ‘소방관’은 소방관 4명이 순직한 2001년 홍제동 방화 사건을 바탕으로 소방관들의 헌신적인 삶을 그린 영화다. ‘친구’(2001)와 ‘극비수사’(2015) 등의 곽경택 감독 신작이다.

‘소방관’의 흥행은 여러모로 이변이다. 4년 묵은 ‘창고 영화’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이 따랐다. 곽도원에게 면죄부를 제공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 여론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상영 중인 할리우드 영화 ‘위키드’와 ‘모아나2’ 등 경쟁작들의 면면이 만만치 않기도 했다. 송강호와 박정민, 장윤주 등이 주연한 한국 영화 ‘1승’이 같은 날 나란히 개봉한 점 역시 걸림돌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12·3 불법 비상계엄 여파로 관람 심리가 위축된 상황이 큰 악재였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투표가 있던 지난 7일 전체 관객 수는 이전 주 토요일보다 12만 명이 줄었다. ‘소방관’은 이날 21만 명을 모으며 ‘모아나2’(27만 명)와 함께 극장 버팀목 역할을 했다.

갈수록 관객 증가… 뒷심 무시 못 해

‘소방관’의 흥행 이변은 여러 수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말 좌석판매율은 이례적으로 40%대(7일 41.2%, 8일 44%)를 기록했다. 매회 상영 때마다 상영관 좌석 10석 중 4석 이상이 채워진 셈이다. 주말 흥행 1위를 차지한 ‘모아나2’의 좌석판매율은 20%대(7일 27.2%, 8일 26%)였다.

관객 숫자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점이다. ‘소방관’의 8일(일) 관객은 23만 명으로 전날보다 2만 명가량 증가했다. 보통 일요일 관객이 토요일보다 감소한다. 10일 관객 8만 명에서 12일 9만 명으로 관객이 늘기도 했다.

‘소방관’의 예상 밖 흥행은 영화가 지닌 투박한 진심에서 비롯됐다. 소방관들의 동지애, 힘겨운 노동 환경, 위험한 화재 현장 등을 우직하게 보여준 점이 20~30대 관객 마음을 파고들었다. 12일 멀티플렉스 체인 CGV 집계에 따르면 ‘소방관’ 관객 50%(20대 26%, 30대 24%)가 20~30대다. 관람료에서 119원씩을 국립소방병원(2025년 개원)에 기부하겠다는 마케팅 전략이 주효하기도 했다. 황재현 CGV 전략지원 담당은 “119라는 누구나 실감할 수 있는 숫자로 관객에게 접근했다”며 “감동 드라마라는 식에 광고 문구를 쓰지 않아 2030세대의 호기심을 자극했다”고 분석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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