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 앞서 땅을 갈아엎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토니 모리슨의 말’

입력
2024.12.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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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집 '토니 모리슨의 말'

편집자주

시집 한 권을 읽고 단 한 문장이라도 가슴에 닿으면 '성공'이라고 합니다. 흔하지 않지만 드물지도 않은 그 기분 좋은 성공을 나누려 씁니다. '생각을 여는 글귀'에서는 문학 기자의 마음을 울린 글귀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그래서 저는 자아가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타자’가 자아를 허락하지 않을 때를 말이죠. 노예제도가 바로 그런 것이니까요. 그리고 자아를, 혹은 지위를 되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예술이 없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작가 토니 모리슨(1931~2019)의 인터뷰집 ‘토니 모리슨의 말’에서 그는 “흑인 경험에 기반한 현실을 백인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이해시키나”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합니다.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자 지금도 존재하는 흑인을 향한 백인의 약탈과 폭력을 인지조차 못하는 이들의 세계에서 모리슨은 꿋꿋하게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예술’을 해왔습니다.

미국 켄터키의 작은 마을에 사는 흑인 소녀의 비극을 그린 ‘가장 푸른 눈’과 도망친 여성 흑인 노예의 이야기인 ‘빌러비드’ 등 모리슨의 눈부신 걸작은 그저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쓴다고 생각하고 싶었다”고 여기며 ‘나의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 그의 말인데요. 이는 이 책을 번역한 이다희 번역가가 ‘옮긴이의 말’에서 “모리슨은 지워진 사람이면서 지워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사람”이라고 전한 까닭이기도 합니다.

1993년 모리슨이 세운 비(非)백인 여성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록은 30여 년이 지나서야 아시아 여성 작가 한강에게로 이어졌습니다. 124년의 노벨문학상 역사를 통틀어 유색 인종 여성은 단 둘뿐이라는 씁쓸한 진실. 그렇지만 세상을 떠난 모리슨의 말은 ‘우리’의 땅이 여전히 비좁다고 실망을 느낄 이들의 등을 밀어줍니다. “제가 그 땅을 갈아엎으면 이다음에 올 젊은 사람들은 똑같은 문을 박차고 나오려고 애쓰지 않아도 될 거예요. 이미 열려 있을 테니까요. 그 사람들은 저보다 무한히 좋은 글을 쓸 거예요.”

전혼잎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