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의 신라 시대 궁궐 유적에서 출토된 16세기 조선백자에서 '용왕' 등 먹으로 쓴 글자들이 처음 확인됐다.
국립경주박물관은 "1975~1976년 '경주 동궁과 월지' 출토품을 재정리해 연구한 결과 16세기 제작된 백자에서 '용왕(龍王)'을 비롯해 다양한 내용이 적힌 묵서(墨書·먹으로 쓴 글씨)를 처음으로 발견했다"고 12일 밝혔다. 박물관은 지난해부터 '동궁과 월지' 출토품을 재정리해 종합 연구하는 '월지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박물관에 따르면 1970년대 동궁과 월지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조선 자기편 8,000여 점 중 이번에 묵서가 확인된 자기편은 130여 점이다. 대체로 16세기에 제작된 백자로, 그릇 밑부분에서 '용왕', '기계요(杞溪窯)', '기(器)', '개석(介石)', '십(十)' 등 다양한 글씨가 적혀 있다. 묵서 가운데는 '졔쥬', '산디' 등 한글도 확인됐다.
학계는 그중 '용왕'명 묵서를 주목한다. 삼국사기에 월지를 관장한 동궁관(東宮官)의 예하에 용왕전(龍王典)이란 관부가 있었다는 기록에 따르면 월지에서 출토된 '신심용왕(辛審龍王)'명 토기는 용왕 관련 제기이며, 월지에서 용왕 제사가 거행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은 신라 멸망 후 월지 일대가 폐허처럼 변하면서 월지의 용왕 제사도 사라진 것으로 여겼다.
박물관 관계자는 "'용왕'이란 묵서가 쓰인 16세기 백자가 월지에서 여러 점 출토됨으로써 적어도 16세기까지는 월지가 용왕과 관련한 제사 또는 의례 공간으로 활용됐음이 분명해졌다"며 "제사 주재자를 뜻하는 '졔쥬'라는 한글 묵서가 확인된 점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 측은 '십(十)'명 묵서에서는 '십'에 점을 찍는 방식으로 변형한 사례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십'은 일부 변형이 이뤄진 예가 있어 숫자가 아니라 부호였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개석(介石)'은 돌보다 단단해 절개를 굳게 지킨다는 뜻으로 사람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백자의 소유자 또는 사용자를 구분하기 위한 목적으로 묵서를 남긴 것으로 보고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16세기 백자 굽 부분에 남겨진 묵서는 조선 전기 경주 지역의 생활상은 물론, 월지가 갖는 의미 등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경주 지역에서 조선 전기의 한글 관련 자료가 보고된 적이 드물다는 점에서 이번 조사 내용이 16세기 경주 지역의 한글문화를 연구하는 데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물관은 내년 재개관하는 월지관에 이번에 확인된 조사 성과를 반영한 상설전시를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