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3사' 파업 예고···택배기사들은 왜 '진짜 사장님'을 찾아나섰나

입력
2024.12.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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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롯데·로젠 택배기사, 반품·배송 거부계획
"하루 10시간 이상 노동, 주 7일 근무 내몰려"
중노위·법원서 '원청=사용자' 인정했는데도
원청 택배사들, 단체교섭 거부하며 대화 불응

'하루 10시간, 주 7일 근무' 상황에 내몰린 택배기사들이 파업을 예고했다. 이들은 "원청인 택배사가 직접 단체교섭에 나서라"고 촉구하고 있지만, 대기업 택배사들은 거부하고 있다. "택배기사의 사용자는 원청"이라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 법원의 1·2심 판결이 나왔는데도 업계는 요지부동이다.

택배사-대리점-택배기사로 이어지는 '먹이사슬'

11일 택배노조 소속 한진·롯데·로젠 본부는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단체협약 체결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박상호 택배노조 롯데본부장은 "택배기사는 하루 10시간 이상, 주 60시간 일하는 과로사 위험에 놓여 있다"며 "용차비(업무를 대신해준 사람에게 주는 돈)가 무서워 아파도 쉬지 못하고 병을 키우고 있다"고 호소했다. 또 "주 4일제를 이야기하는 시대에 택배기사는 주 7일 노동에 내몰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CJ대한통운은 다음 달부터 주말에도 물건을 배송하는 '주 7일 배송제'를 실시하는데, 택배기사들은 "주 7일 노동을 강제하는 제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택배 산업 먹이사슬은 3단 구조다. CJ대한통운, 한진택배 같은 택배 대기업이 원청 역할을 하며 개별 대리점에 배송 물량을 나눠준다. 대리점은 택배기사들과 계약을 맺은 뒤 할당받은 배송 물량을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택배기사들은 물건을 배송한 만큼 수익이 생기다 보니 주야간 쉴 새 없이 배송에 나선다. 배정된 권역에 할당된 물건을 소화하지 못하면 수수료나 물건 배당에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열악한 현실에 몸이 아파 일을 하지 못하면 제3자를 고용해서라도 배송 물건을 소화하는 택배기사들도 많다.

문제는 이들의 법적 신분이 자영업자(개별사업자)인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점이다. 노조활동에 제약이 있고 원청과 대화도 쉽지 않다. CJ대한통운의 경우 택배기사들과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에 불복,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2심까지 모두 패소하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법원은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는 근로조건 등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포함한다"며 택배사를 사용자로 인정했다. 하지만 CJ대한통운 관계자는 "개인사업자 신분인 택배기사들은 대리점과 계약관계가 있기 때문에 원청이 직접 교섭을 하는 것은 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이다.

다른 택배사들도 같은 입장을 취하며 한 곳도 택배기사와 단체교섭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 서류상 사용자인 대리점은 처우개선에 대한 재량권이 제한적인 만큼 대화에 소극적이다. 이에 택배기사들은 '진짜 사장님'인 원청 택배사들이 단체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다.

다만 CJ대한통운은 원청이 교섭을 거부하고 있지만 대리점연합회가 교섭에 나선 상태라 이날 기자회견에선 빠졌다. 대리점연합회는 개별대리점의 연합체다.

"택배사 교섭 거부하면 반품·배송거부 등 파업 시작"

택배기사들의 요구는 노동시간 단축과 처우개선이다. 택배노조는 △원청 택배사와 대리점연합회의 단체교섭 수용 △주 60시간 근무 및 주 5일제 쟁취 △부당 페널티 철폐 등을 촉구했다. 부당 페널티는 택배기사가 대리점에서 물건을 인수받기 전에 파손된 물건에 대한 보상까지 택배기사에게 떠넘기는 행태가 대표적이다. 경조사휴가 및 여름휴가, 병가, 출산휴가를 보장하라는 요구도 있다.

노조는 택배사나 대리점연합회가 단체교섭에 나서지 않을 경우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롯데택배는 17일부터 반품거부, 전략고객사 배송거부 등 부분파업을 실시한다. 한진택배는 14일 경고파업을 한 뒤 20일부터 반품거부, 주요고객사 배송거부에 나선다. 로젠택배도 비슷한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이후에도 교섭이 이뤄지지 않으면 추가 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노조는 "쌓여만 가는 택배노동자들의 미해결 과제를 해결하고 노동3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송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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