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백수가 됐지만 마음 하나는 편안합니다. 그날 밤 바로 계엄이 해제돼서 망정이지 안 그랬어봐요. 제가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겠어요? 지금쯤 어디 붙잡혀가서 얻어 맞고 있을지도 모르죠."
지난 11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난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낮게 웃었다. 지나고 나니 이렇게 웃는 거지, 만에 하나 계엄이 성사됐다면 케이블 타이 수갑 차고 지하 벙커에 끌려갔을지도 모른다. '감히 사표를 던진 반국가세력'으로 표적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12월 3일 '비상계엄'이란 군부독재 시절의 망령이 좀비처럼 되살아난 그 직후 류 전 감찰관은 "계엄과 관련된 일체의 지시나 명령에 따를 수 없다"며 법무부에다 사표를 던졌다. 홍장원 당시 국가정보원 1차장은 국회의원 체포 대상자 리스트를 듣고는 '미친 X'이라 생각하고 응하지 않았다. 국군방첩사령부의 법무장교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을 무산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의 충격적인 계엄 선포 이후, 질문 하나가 우리 머리 속에 똬리를 틀 수밖에 없다. 나랏일을 하는 공무원이란 대체 무엇인가. 한나 아렌트의 냉소 어린 표현 '악의 평범성'에 걸맞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이름을 얻었지만 온갖 격노를 통해 오직 자신에게만은 사람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한 대통령, 그리고 그렇게 충성한 조직원들이 벌이는 시시하고도 진부한 진실 게임을 대면해야 할 시간이다. 그래서 류 전 감찰관을 만났다.
-백수가 됐다. 사표 낸 뒤 어떻게 지냈나.
"예전에 실업자 여러 번 해봤는데, 이번만큼 마음 편한 실업자는 처음인 거 같다. 계엄이 유지됐으면 반국가사범이라고 어딘가 끌려가 취조받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서울대 전자공학과 87학번인 류 감찰관의 첫 직장은 삼성전자였다. 회사 다니다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이후 검사를 하다 삼성전자에서 다시 일하는 등 몇 차례 이직을 했다. 업을 바꿀 때마다 생계를 비롯해 이런저런 걱정이 없을 수 없었지만, 내란을 박차고 나온 이번만큼은 사표를 던지고 난 이후가 너무나 홀가분하다 했다.
-사표 내고 주변 반응은 어땠나.
"친구들, 선후배님들 다들 격려해주셔서 고맙다. 이제 조용히 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라 생각한다. 국회에서도 불렀는데 이제 와서 굳이 나까지 말을 얹기가 그래서 사양했다."
-3일 계엄의 밤, 그날 상황을 설명해준다면.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법무부로 다 들어오라 해서 과천으로 갔다. 모두들 그러셨겠지만 가짜 뉴스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실감이 없었다. 헬기가 뜨고 어쩌고 하는 라디오 뉴스 속보를 들으니 '아, 진짜구나' 싶었다. 고민하던 중에 1979년 전두환·노태우 등 하나회 장성들의 12·12 군사반란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생각났다. 계엄의 불법성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그렇기에 법무부에 도착해 회의실에 들어가자마자 장관에게 계엄 관련 회의냐, 묻고는 그렇다면 아무것도 따를 수 없으니 사표를 내겠다고 하고 바로 돌아나와서는 옆에 있는 용지에다 사표를 써서 냈다. 그때 시계를 보니 12월 4일 0시 9분이었다."
-12·12사태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어떻게 알고 있었나.
"내가 초임검사로 서울지검에서 근무한 게 1997년이다. 그해 4월 12·12 군사반란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이 있었다. 아무래도 법률가들이니까 그 판결문을 두고 검사들 사이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알다시피 그 사건은 검찰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뭉갰다가 김영삼 당시 대통령 지시로 수사와 처벌이 이뤄졌다. 검사들 사이에선 '이런 사안에 대해 검찰이 미리 몸을 사린 것은 잘못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많았다."
-그때는 어떤 입장이었나.
"그때 제일 이야기를 많이 나눈 선배 중 한 명이 지금 국민의힘 의원인 박형수 선배다. 그때 공안 업무를 맡고 있던 박 선배는 '대통령 지시 하나로도 너끈히 구속하고 기소해서 유죄받을 사건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검찰을 비판했다. 비교적 온건한 입장이었던 나를 두고는 '명백한 군사반란인데 너는 왜 그렇게 미온적이냐, 너도 군부 쪽이랑 똑같은 사람이냐'고 혼냈던 기억이 있다."
-사태 초기 모두가 긴가민가할 때 어떻게 보면 가장 먼저 '내란'이라 선언한 셈이다. 하지만 지금도 내란이 성립하네 마네, 내란이긴 한데 미수에 그쳤네 하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엉터리 주장이다. 12·12 판결문을 보라. 인터넷 검색만 해도 다 나온다. 내란죄의 국헌문란 행위란 폭력 행위로 국가 기능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곤란하게 한 경우다. 무력을 동원하는 등 비합법적인 방식으로 헌법기관을 통제하는 순간 내란죄는 성립한다. 출동 명령받고 헬기 타고 나간 군인이 국회에 내리는 순간, 경찰이 국회 문을 걸어 잠그고 통제하는 순간 이미 내란이다. 성공이냐 실패냐 여부, 얼마나 강한 폭력을 행사했느냐 여부,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 싶어서 철수를 했느냐 여부 같은 건 아무 상관없다. 군경 동원 때 이미 내란죄는 성립했다."
-지휘관들은 국회 장악까진 사전에 몰랐고, 나중에 알고서는 주저했다고들 한다.
"말이 안 되는 변명이다. 전쟁에서야 작전 지시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 그런데 국회에 진입해서 국회를 차단하고 국회의원을 강압적으로 몰아내거나 체포하란 지시를 받았다? 그 자리에서 바로 명령을 거부했어야 했다. 소극적인 태도였다 한들 그 명령을 받아들인 것 자체가 문제다. 홍장원 국정원 1차장을 보라. 그분도 육사를 나왔는데 국회의원 체포 리스트를 전달받고는 묵살했다. 계급이 낮은 일선 군인도 아니고, 여차하면 생사의 갈림길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주요 지휘관들이 그 정도 판단도 못 했다는 건 정말 시시한 변명이다. 내게는 자신들의 준비 부족을 마치 주저한 것인 양 둘러대는 것처럼 들린다."
-우리가 탄 헬기가, 차량이 국회로 간다는 걸 아는 순간, 혹은 국회에 내려준 순간 작전을 거부해야 했다?
"그렇다. 그 순간 항명했어야 한다. 참된 군인이라면 '명예로운 항명'을 택해야 했다. 항명을 함으로써 오히려 그 명령을 내린 사람이 반란죄를 저지르고 있음을 확정적으로 보여주는 기회로 삼았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군 같은 폐쇄적인 집단에 대해서는 전반적인 민주주의 교육을 처음부터 다시 시켜야 한다."
-'김용현에게 이용당했다'며 울먹이던 707특임단장 김현태 대령의 기자회견은 짠했다.
"특전사 내의 특전사라 불리는 707특임단은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최정예 부대다. 유사시 최고난도 작전에 투입될 그런 부대를 저런 식으로 망쳐놓은 윤석열 대통령이야말로 반국가세력이자 간첩 아니냐고 되묻고 싶다. 분통 터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군이나 검찰 등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이들에 대해서는 민주주의 교육을 다시 시켜야 한다."
-국무회의는 어떤가. 계엄 선포 전 11인의 국무회의 참석자 가운데 2명만 명시적으로 반대했다, 아니다 다들 반대했다로 말이 엇갈린다. 그 가운데 특히 박성재 법무장관은 법무행정의 수장인데.
"규명돼야 할 부분이다. 상징적인 것은, 가장 반대한 사람이라고 알려진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스스로 반대했다는 말을 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반대했다고 한다는 점이다. 박 장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때 법무부 회의 분위기를 보면 꼭 그랬을 것 같지도 않다."
-들어가자마자 사표를 낸 그 회의 말인가.
"그렇다. 내가 회의실에 막 도착했을 때 장관이 무슨 말씀 중이었는데 내가 중간에 자르고 '동의할 수 없으니 사표 내겠다' 했더니 그러라 했다. 출입국 관련 논의를 하던 중이었던 것 같았는데, 그때 장관의 말투나 회의장 분위기는 계엄을 반대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더 많지만, 앞으로 많은 고초를 겪으실 걸로 보여 더 이상 말하고 싶진 않다. 다만 국무위원은 대통령에게 듣기 좋은 소리나 하는 대통령의 부하가 아니다."
-사표 내고 돌아서면서 이런저런 걱정은 되지 않았나.
"그런 건 없었다. 12·12도 1979년에 일어난 일이 1997년에 가서야, 무려 18년 만에 '군사반란'이라 확정지어졌다. 엄혹한 독재가 이어졌고 그 뒤에도 '구국의 결단'이니 '고도의 통치행위'니 요란스럽게 포장도 했지만 결국 내란으로 결론지어졌다. 마찬가지로 12월 3일 밤의 그 일 또한, 만약 성공한다 해도, 그 때문에 몇 년이 걸린다 해도, 또 실패한 뒤 지금처럼 이런저런 논쟁과 논란이 벌어진다 해도 결국 내란으로 결론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군인이든 그 누구든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간 우리 사회가 그나마 쌓아온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 같은 거다.
"맞다. 내가 사표 낸 게 대단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동료 공무원들보다 판단이 좀 더 빨랐을 뿐이라 생각한다. 처음에 이게 뭐지, 싶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들 결국은 나와 같은 선택을 했었으리라고 본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상식적으로 이런 계엄을 받아들일 사람 누가 있겠나."
-역사는 기이한 방식으로 반복된다.
"정말 그렇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되돌리냐'라고 믿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주 시대착오적 생각을 가진 대통령이 '1979년의 전두환'을 고스란히 반복했다. 그것도 오직 자기를 위해서다. 그래서 죄질이 너무나 나쁘고 악질적이다. 대통령이 그러는 것도 충격적인 일인데,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 여전히 유신헌법 시대 가치관을 가진 유신잔당 같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 더 놀랍고 분하다."
-'12·12 전두환'보다 '12·3 윤석열'의 죄질이 훨씬 더 나쁘다?
"당연하다. 12·12의 경우 하나회가 자신들의 주도권 상실을 우려했다는 점이 컸고, 여러 시위 소요 사태도 있었고, 당시 우리 사회의 전반적 수준 자체가 낮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보면 12·12는 명백한 잘못이긴 해도 최소한 시대착오적이란 말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무려 45년이 지났고 그간 대한민국이 얼마나 발전했고 달라졌나. 이번 계엄 사태를 일으킨 사람들은 아직도 1970년대 유신시대에 살고 있다고 자백한 거나 다름없다."
-계엄 같지 않은 계엄이란 의미에서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 이번 계엄을 '생활형 계엄', 유시민 작가는 '참으로 프라이빗(사적인)한 계엄'이란 표현을 쓰더라.
"개인적 욕구를 그대로 반영한, 말 그대로 개인 맞춤형 계엄인 것 같다. 미운 국회의원들, 미운 언론들, 미운 의사들 혼내주겠다는 거다. 그러니까 12·12보다 죄질이 더 나쁘다는 거다. 이런 게 무슨 계엄인가 싶을 정도다."
-너무 놀라워서인지, 윤 대통령의 정신감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오래된 얘기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대통령실에 근무했는데 내려오는 지시가 하나같이 피해망상, 과대망상적인 것이어서 너무 괴로워서 그만뒀다 한다. 그때는 그냥 그렇게 듣고 말았는데, 자기 말 안 듣고 반대하는 사람은 모두 반국가세력이라는 피해망상, 그리고 내가 한번 확 뒤집으면 다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과대망상이 결국 계엄으로 치달은 것 같다."
-검사 시절엔 그게 정의와 공정으로 포장됐다.
"어떻게 보면 대통령은 '나는 100% 정의로우니까 내 멋대로 하겠다'는 점에서는 참 일관된 삶을 살아온 셈이다. 예전에야 직위도 낮고 말려줄 사람이라도 있었지만 대통령이 되면서 그 한계가 모두 없어졌고 그냥 폭주한 것 같다."
-검찰 경찰 공수처 등 경쟁적 수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계엄 세력들의 발언을 보면 현실 인식조차 엉망이지만 아주 치사하다. 이런 사람들은 나중에 법정에 가서도 온갖 절차상 하자 문제까지 다 물고 늘어진다. 그러니 책 잡히지 않게 잘 진행하는 게 좋다고 본다. 기관 간 협의나 특검 같은 건 그런 방향으로 잘 정리되리라 믿는다."
-검찰이 윤석열을 잡아서 뒤늦게 정의로운 척하려 한다는 불편한 시각도 있다.
"윤 대통령을 엄벌에 처한다 한들 이제 와서 검찰이 박수 받기 힘들다는 거는 검찰 스스로가 제일 잘 안다. 동시에 그런 상황에서 엄벌조차 못하면 정말 큰일 난다는 위기감도 있다. 보는 사람마다 평가는 다를 수 있겠지만 누가 됐든 이런 사건을 소홀히 할 수 있는 기관은 이제 없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국가란, 공직자란 무엇일까.
"거창한 얘기들이 있지만 나는 그런 것보다는 우리 개개인이 살아가는, 소소한 자유와 행복을 국가가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부분을 강조하고 싶다. 국가란 무엇인가, 공무원이란 무엇인가라는 건 굉장히 무겁고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국가와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은 결국 개개인들이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한 자유와 행복을 지켜주는 것이고, 지켜주지 못할 망정 함부로 침해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거다. 판단과 행동의 기준점이 거기에 있어야 한다."
백수가 된 류 전 감찰관은 이제 뭘 할까. 당분간은 좀 쉬면서 또 다른 일상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국가가, 공무원이 개개인의 소소한 일상을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 얘기이기도 하다. 한때 계엄을 선언했던 그 국가는 류 전 감찰관의 사표를 인터뷰 당일이던 11일 저녁 마침내 수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