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입주해 있는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 앞에 민간인 학살, 강제노역 등 국가폭력 피해자와 가족들이 몰려들었다. 박선영 신임 진실화해위원장 임명에 분노해 그의 첫 출근을 막겠다며 모인 것이다. 오승희 삼청교육 피해자유족회 대표는 "45년 전 군홧발에 짓밟힌 트라우마에 저희가 모여 치유 수업을 받던 바로 그날, 계엄령이 선포됐다"며 "국가의 무력 사용을 정당화시키는 박선영이란 인물을 이 자리에 보낸 것을 참을 수 없다"고 호소했다. 경찰이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건물 진입을 막고, 박선영 위원장이 혼잡한 건물 입구 대신 지하주차장을 통해 진입하면서 출근 저지는 실패로 돌아갔다.
'12·3 불법계엄 사태’ 직후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박선영 위원장의 공식 임기가 이날 시작됐다.
박 위원장은 첫 출근 뒤 진행된 취임식에서 "국내외적으로 엄중한 시기에 막중한 임무를 맡게 돼 어깨도, 마음도 무겁다"며 "우리 위원회가 균형 잡힌 관점에서 보다 효율적이고도 공정하게 운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박 위원장은 내년 11월 공식 활동 종료를 앞둔 진실화해위의 마지막 위원장이다.
그의 임명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내란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이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6일 박 위원장에 대한 임명을 재가해 '알박기 인사'란 '뒷말'이 나왔다. 대통령 탄핵이 추진되는 데 헌법재판소장 후보로 거론되는 정형식 헌법재판관의 처형인 박 위원장을 임명한 것도 석연치 않다. 야당에선 "탄핵에 대비한 뇌물"이라고 날을 세웠다. 다만 박 위원장은 "임명 과정에서 대통령 전화를 받은 적도 없다"고 반박하는 상황이다.
독재와 군사 쿠데타를 옹호하는 박 위원장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그는 과거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5·16 혁명이 일어났을 때조차도 국민은 반대하거나 안 된다고 가로막거나 한 사람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진실화해위 내부의 반대도 거세다. 전날 송상교 사무처장은 박 위원장 임명을 비판하며 사의를 표명했다. 취임식에 불참한 야당 추천 상임위원 중 한 명인 이상훈 위원은 "조만간 위원들의 의견을 취합해 박 위원장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 임명 철회 요구 성명엔 이날 오후 1시 기준 522개의 시민·연구자 단체에서 1만4,000여 명이 동참했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자신의 취임은 정당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취임식에서 "대통령 임명이 부당하다는 논란이 있지 않냐"고 질문하자 "논란일 뿐"이라고 답했다. "입장을 밝혀달라"는 요청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다 밝혔다"고 일축했다. 그는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는 것 자체가 헌정 유린"이라고 썼다. 이어 "탄핵이 부결된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은 윤석열이고 혼란스러운 상황일수록 법치는 지켜져야 한다"며 "인사를 투쟁의 목적으로 삼아 법치주의를 말살하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내란행위"라고 주장했다. 또 "국가폭력 피해자라고 공인에 대한 폭력이 정당화되진 않는다"고 해 피해자들의 공분을 샀다.
18대 국회에서 자유선진당 비례대표로 활동한 박 위원장은 동국대 법학과 부교수와 독도영토수호대책특별위원회 위원, 한국헌법학회 부회장, 탈북민·국군포로 인권 단체 물망초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