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로 돌아온 안은진·김성철... '한예종 10학번' 전설 이어간다

입력
2024.12.11 04:30
22면
[연극·뮤지컬서 인기몰이 안은진·김성철]
안은진 주연 '사일런트 스카이' 전석 매진
'뉴 지킬'로 돌아온 '지킬 앤 하이드' 김성철

미국 여성 천문학자 헨리에타 레빗(1868~1921)의 생애를 다룬 국립극단 연극 '사일런트 스카이'(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는 전 회차 전석 매진으로 시야제한석까지 티켓을 추가로 판매했다. 지구와 은하를 말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다루지만 배우 안은진의 7년 만의 무대 복귀작으로 개막 전부터 화제였다. 2012년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데뷔한 안은진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연인', '나쁜 엄마' 등으로 대중에 이름을 각인시켰다.

한국 프로덕션 20주년을 맞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내년 5월 18일까지 블루스퀘어)에선 새로 투입된 지킬 역의 배우 김성철이 주목받고 있다. 김성철은 드라마·영화와 무대 연기를 활발히 병행해 왔지만 '지킬 앤 하이드'는 전작들과 비교해 남자 주인공의 매력이 흥행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작품. 여러 차례 이 작품에 출연한 홍광호, 전동석과 트리플 캐스팅인데도 12월 회차는 빈자리가 거의 없다.

최근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김고은과 이상이, 박소담 등과 더불어 '한예종 전설의 10학번'으로 불리는 대세 배우 안은진, 김성철이 드라마·영화에 이어 무대에서도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안은진 "꿈 향한 여성 연대 표현에 중점"

"끝까지 밀고 가는 거야, 시간문제니까 답은 그 안에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는 거야."

늦은 밤 홀로 일하며 진전되지 않는 연구에 막막해하던 헨리에타 레빗은 사랑스러운 말투로 스스로를 격려한다. 안은진의 긍정적 에너지가 그림자처럼 존재했던 여성 천문학자의 삶을 관객 곁으로 가까이 불러왔다. 연극은 변광성의 시간 간격과 밝기의 관련성을 밝혀낸 레빗 등 20세기 초 여성 천문학자들의 이야기다. 여성의 참정권이 허용되지 않았던 시대지만 이들은 묵묵히 자기 삶을 일궜다. 연극 특유의 폭발하는 감정 표현은 없고, 학술적 용어가 많지만 배우들의 좋은 연기 합으로 지루하지 않게 전개된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사일런트 스카이'의 극작가 로렌 군더슨은 역사, 과학, 문학 분야의 여성 인물을 조명하며 여성의 힘과 목소리, 열정에 중점을 두는 작품을 써 왔다. '사일런트 스카이'는 자연스럽게 여성의 연대가 빛난다.

안은진은 9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연대하는 여성 동료들과 함께 힘을 얻어 꿈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부분을 전달하기 위해 중점적으로 연습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드라마, 영화를 찍으면서 무대에 다시 서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다"며 "요즘 하루하루 설레는 마음으로 관객을 만나며 회차가 거듭될수록 떠나보내기 아까운 매일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무대에 서니 떨리고 소리를 어떻게 냈는지 고민했는데 첫 공연을 하면서 '이게 무대의 맛이었지' 생각했다"고도 했다.

안은진이 7년 만에 무대에 다시 선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사일런트 스카이'를 윤색하고 연출한 김민정 연출가. 안은진의 데뷔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연출하기도 한 김 연출가는 "'사일런트 스카이'는 천문학이자 역사이면서 아름다운 여러 맥락이 펼쳐지는 이야기"라며 "열정을 갖고 임해 줄 배우라는 믿음이 있어 안은진을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김성철 "오래 공연된 덕분에 마침내 이룬 '지킬'의 꿈"

"짐승처럼 다룰까요? 사람이에요. 인간이라고요, 존. 보세요. 반응하고 있어요. 감정이 있는 겁니다."

김성철은 이달 초 '지킬 앤 하이드' 개막 초기부터 흡인력 있는 연기로 '철지킬(김성철 지킬)' 타이틀에 어울리는 배우임을 증명해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두고 헨리 지킬 박사와 친구인 존 어터슨이 대화를 나누는 첫 장면부터 대사에 풍부한 감성을 담았다.

김성철은 2014년 뮤지컬 '사춘기'로 데뷔해 '몬테크리스토', '데스노트' 등 여러 뮤지컬에 출연했지만 자신의 음역대를 벗어나는 '지킬 앤 하이드'는 큰 도전이었다. 그는 제작사 오디컴퍼니를 통해 공개한 인터뷰에서 "배우를 꿈꾸게 된 2008년부터 '지킬 앤 하이드' 음반을 꾸준히 따라 불렀다"며 "캐스팅되고 '지금 이 순간'을 무대에서 부르게 됐다는 생각에 차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다 울었다"고 밝혔다.

그는 "2018년 조승우·홍광호 지킬을 보고 저 무대는 바라만 보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다"며 "꿈꿔 왔던 무대에 새로운 캐스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감히 도전해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내 음역보다 낮은 음역대의 공연을 하게 돼 딴딴한 소리를 내려고 음악 연습을 했다"고 덧붙였다. 김성철은 지난 5일 '지킬 앤 하이드' 첫 공연을 마친 후에는 감격에 겨워 무대 인사를 하기도 했다. "20년 전엔 제가 갓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오래오래 공연이 돼 저도 무대에 설 수 있게 돼 영광입니다."


김소연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