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반듯한 게 하나도 없네..." 익숙함 벗어던진 건물들

입력
2024.12.16 10:00
24면
[정태종의 오늘의 건축]
끝·<17> 현대건축의 최전선, 복잡계 건축

편집자주

'정태종의 오늘의 건축'은 치과의사 출신의 건축가인 정태종(58) 단국대 건축학부 조교수가 국내외 현대 건축물을 찾아 각 건축의 지향점과 특징을 비교하고 관련된 이슈를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4주에 1번씩 연재합니다.

현대 건축은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건축을 추구했던 근대 건축에서 벗어난 이후,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건축을 향해 부단히 나아가고 있다. 최근 현대 건축은 공간을 지각하고 장소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는 현상학적 건축에서 공간의 관계를 새롭게 형성하는 건축 위상학을 지나, 여러 변수를 이용한 파라메트릭 건축, 변화 속에서도 통일과 균형을 추구하는 복잡계 건축이라는 최첨단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최전선의 건축을 살펴보자.

복잡계 이론과 파라메트릭 건축

우리가 사는 세상인 복잡계는 기존의 법칙과 이론이 적용되는 절대적인 세계와는 다르다. 완전한 질서나 극단적인 무질서 사이에 존재하며, 구성하는 많은 요소와 그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집단의 성질이 결정된다. 생명 현상이 대표적인 복잡계라 할 수 있는데 세포를 구성하는 단백질 분자가 모여서 각 분자의 성질과 무관하게 생명이라는 새로운 성질이 만들어지는 창발 현상이 나타난다. 기존의 절대적 진리 세계와 다르게 적용해야 하는 복잡계 이론은 최근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사회과학과 예술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이러한 복잡계의 특성을 건축에 이용하는 분야가 파라메트릭 건축과 복잡계 건축이다. 파라메트릭은 예를 들어 건축의 빛, 바람과 같은 환경 조건, 건폐율과 용적률의 건축 법규, 건축주 요구 사항 등 매개 변수가 입력된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형태와 공간을 만드는 건축 설계 방식이다. 즉 생명이 처음 만들어지고 자라나 진화하는 과정에 숨어 있는 자연의 원리를 건축 분야에 적용해, 자연과 유사한 관점에서 공간을 바라보고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만 가오슝역 리모델링

대만 남부에 있는 가오슝시에서 오랫동안 중앙역 역할을 해 오고 있는 가오슝역의 기존 역사는 근대 일본이 만든 전형적인 제관(帝冠)양식의 건물이다. 최근 가오슝 중앙역은 시내 철도 지하화 개통에 맞춰 좌우측 일부분은 철거하고 초기 부분만 남기는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네덜란드 건축 그룹 '메카누(mecanoo)'가 설계했는데 설계의 개념은 가오슝의 심장으로 도시의 중심부라는 상징과 함께 주변의 녹색 경관을 연결해서 기차역을 마치 공원처럼 만들었다. 기차역의 내부공간은 복잡계 건축을 이용하여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기차역 내부에 서서 고개를 들면 보이는 천장은 우리에게 익숙한 똑같은 크기의 패널이나 루버로 만드는 보통의 기차역과는 전혀 다르다.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원형 패널로 이루어진 복잡한 천장인데 이를 통해 기차역 내부는 마치 흰 구름이 뭉실뭉실 떠 있는 듯하고 그 사이로 햇빛이 들어와 밝고 넓은 공간을 연출한다. 기능과 효율성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새로운 공간에 매우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늘 아래 같은 사람이 없고 꽃과 나무와 같은 자연도 동일한 것이 없는 세계에서 같은 크기의 재료와 형태로 기하학적인 공간을 만드는 기존의 건축은 인간이 만드는 인공적인 합리화의 결과일 것이다. 효율과 비용에 따른 건축은 단순하고 추상적이고 편리한 시공을 제공하지만 기능적인 것에 그치는 실망스러운 결과일 뿐이다. 가오슝역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통해 이러한 기존의 건축 관습에서 자유로워진 현대 건축의 새로운 경향을 볼 수 있다.


크고 작은 원으로 만든 도서관

일본 현대건축가 도요 이토가 설계한 대만 타이베이의 쿠첸푸 기념도서관은 기존 대만국립대학교 도서관과 연결하여 증축한 도서관이다. 도서관의 외부 형태는 다양한 크기와 모습의 원반과 연결한 기둥으로 만들었고 내부는 높이가 다른 곡면의 책장이 다양한 공간을 구성한다. 그리고 자연의 빛이 도서관 외피를 이루고 있는 사방의 유리 커튼월(통유리벽) 벽체와 서로 다른 크기의 원반 형태 구조물로 가득한 천장 틈 사이로 들어와 도서관 내부를 밝힌다. 이곳은 건축물의 형태와 내부 공간뿐만 아니라 도서관 외부의 조경도 도서관 형태와 유사하게 타원형으로 구성되고 조경과 도서관 사이에는 작은 연못을 놓았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은 연못 속 작은 돌다리를 건너면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의 강을 건너는 듯한 착각에 빠질 듯하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건축적 요소가 반복하면서 만나 예상하지 못하는 새로운 건축을 만든다는 복잡계 건축의 공간적 경험을 할 수 있다.


박공이 여러 개 모여 만든 하나의 공간

서울 노원구에 자리한 한내지혜의숲도서관은 언뜻 보면 지나쳐 버릴 만큼 눈에 띄지 않는 건축물이다. 중랑천변에 자리 잡은 자연체육공원 안에 위치해 있는데, 주변의 고층 공동주택과 천변 사이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운생동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이곳은 버려진 공공 공간을 활용해 공원의 활기를 되찾고 책을 매개로 하여 지역문화와 자연공원을 결합했다. 도서관의 공간을 이루는 기본 단위는 두 가지인데, 집을 상징하는 오각형의 작은 박공 형태인 외부와 책꽂이로 만든 벽인 내부로 나뉜다.

도서관 외부 형태는 작은 집들이 모여서 하나의 작은 마을을 만드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한 내부의 책꽂이 벽은 공간을 구성하는 구조이면서 나누는 장치인데 기존 벽이 공간적 경계를 명확하게 만드는 한계가 있었다면 이곳의 새로운 벽은 변화하는 공간으로 서로 소통하여 통합하고 나누는 미로와 같은 공간을 재현한다. 그 결과 사용자는 도서관 내·외부 곳곳의 흐르고 머무는 공간 속에서 유목민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책장과 같은 도서관의 작은 내부 공간은 순환하는 공간을 통해 확장하고 작은 집과 같은 다변체가 함께 모인 도서관 외부와 합쳐져 전체를 완성하며 새로운 가치의 장소로 발전한다.

양파처럼 켜켜이 겹쳐진 지붕

운생동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또 하나의 도서관인 오동숲속도서관 역시 복잡계 이론을 적용한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서울 성북구 오동근린공원의 옛 목재 파쇄장 자리에 도서관을 지은 것으로, 나무로 지은 독특한 공간과 형태의 건축물이다. 한쪽 끝에서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건물을 감아 나선을 그리며 올라간 소라고둥과도 같은 공간은 마치 주변에 위치한 월곡산의 산봉우리가 도서관과 연속되어 연결된 듯 보인다. 실제 건축물의 형태는 도서관 중앙인 공용 공간에 높은 기둥을 세워, 바깥쪽으로 감싸는 기둥과 보를 끼우고 다른 한끝에 새 기둥을 세우는 방식으로 공간이 계속 확장하면서 켜켜이 겹쳐진 양파와도 같다. 이와 함께 나선형 공간을 따라 움직이듯 접힌 지붕은 내부에서 외부로 뻗어나가는 원심력을 나타내는 동시에 위아래 방향의 수직적 변화를 만든다. 연속된 지붕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수평으로 펼쳐지는 겹쳐진 공간의 풍경이 모여 도서관을 역동적이고 투명한 3차원의 공간으로 만든다. 도서관 전체는 커다란 하나의 공간이지만 자세히 보면 작은 부분의 공간과 다양한 높이의 지붕이 끊이지 않고 연속되어 전체를 만든다. 작은 유닛이 유사한 복제를 통하여 커지는 복잡계 이론의 건축적 적용이라 할 수 있다.

현대건축의 새로운 경향과 미래의 건축

2000년 이후 현대건축의 주요한 경향인 복잡계 건축은 자연의 원리 중 형태적 은유로서의 모사와 재현에서 벗어나 복잡한 자연 속 조직의 변화하고 성장하는 특성을 이용한다. 특히 현대건축은 자연의 반복적 증식, 표면의 분절과 분화, 상호관계적 자기조직화, 알고리즘적 진화 등을 통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공간을 구현하고 있다. 현대건축은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여러 새로운 설계 방법이 급부상하고 있어, 앞으로 연구가 더 필요하다. 건축은 인간 내면의 공간적 표현이자 세상과의 대화이다. 지금까지 현대건축은 한계를 맞을 때마다 현명하게 대처하여 왔고 그 과정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보다 흔들림 속에서 같이 움직이며 균형을 잡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앞으로의 건축을 계속 지켜봐야 할 이유다.


글·사진=정태종 단국대 건축학부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