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후폭풍으로 정국이 격랑에 휩싸이면서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입법도 줄줄이 멈췄다. 여야 모두 첨단 기술 주권 확보를 위해 시급하다고 강조하던 인공지능(AI) 기본법 제정도 연내 처리가 불투명해졌다.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선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법률안(AI 기본법)'과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폐지안'이 상정될 예정이었으나 오르지 못했다. 법사위가 이날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를 규명할 상설특검 수사요구안을 심의하면서 정책 법안 심의가 뒤로 밀렸기 때문이다. 예정대로라면 두 법안은 10일 본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ICT 정책 법안들은 당분간 국회에서 동력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칩거 중인 윤 대통령이 2선 후퇴를 시사하며 대통령 권한을 총리와 국민의힘이 공동 행사하겠다고 나섰으나 위헌·위법 논란이 거세기 때문이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KBS라디오에 출연해 "국회에서 AI기본법을 통과시키면 대통령이 결재를 해야 공포가 되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사인을 해야 하는데 그 권한을 총리와 당에 넘길 수 있겠느냐"고 했다. 국민의힘 소속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도 "현재 시점에선 정책 법안은 논의 우선 순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했다.
ICT 업계에서는 특히 AI기본법 연내 처리 불발에 대한 우려가 많다. AI기본법은 AI의 법적 정의부터 산업 육성과 규제 방향을 담고 있다. AI기본법이 제정되면 관련 기업들은 AI 학습데이터 범위, AI 서비스의 책임소재, 저작권 문제 등의 기준을 설정해 사업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불투명해졌다. AI 기술 패권국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차기 행정부가 AI 차르(총책임자)를 임명하며 관련 규제 완화와 지원 강화를 약속한 것과 대비되는 상황이다. ICT 업계 관계자는 "AI 산업은 미국과 중국이 한국보다 백 걸음쯤 앞서가고 있는데 이를 따라 잡으려면 정부가 기업들의 투자 불확실성을 제거해줘야 한다"면서 "AI 산업에 있어서 네거티브(부정적인)한 규제 장벽이 생기는 것도 기업 입장에선 부담이지만 불확실성이 더 큰 장벽"이라고 말했다.
AI 관련 연구개발(R&D)을 하는 벤처·스타트업계도 정치 혼란이 길어지면 투자 심리가 얼어붙을까 걱정이 많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외부 투자가 어려워지면 정부 예산안이라도 제때 통과돼야 정책 자금이나 융자 활용에 대한 시기를 예측할 수 있는데 투자시장이 전반적으로 어려워질 것"이라고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