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인천항 갑문 공사 중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인천항만공사를 안전·보건조치 의무가 있는 도급인으로 보고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죄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산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최준욱 전 인천항만공사(공사) 사장과 공사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지난달 14일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2020년 6월 3일 인천 중구 인천항 갑문 위에서 정기 보수 공사를 하던 40대 A씨는 작업 중 시설물 추락으로 숨졌다. A씨는 공사와 도급 계약을 맺은 B사 소속이었다. 검찰은 공사가 현장에 안전 설비를 마련하지 않았다면서 최 전 사장을 기소했다. 양벌규정(범죄 행위를 한 사람과 관련 있는 법인도 형벌을 과할 것을 정한 규정)에 따라 공사도 재판에 넘겨졌다.
쟁점은 최 전 사장을 도급인과 건설공사 발주자 중 어느 쪽으로 봐야 하는지 여부였다. 산안법상 도급인은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 자로 형사책임을 부담하지만, 발주자는 단순히 건설공사를 도급하는 자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
1심은 최 전 사장에게 징역 1년 6개월 실형을, 공사에는 벌금 1억 원을 선고했지만 2심은 무죄로 뒤집었다. 인천항만공사가 건설공사 시공을 직접 수행할 자격이나 능력이 없는 발주자에 불과하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이 틀렸다고 보고, 공사를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지는 도급인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도급인과 발주자의 구별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대법원은 도급인 여부를 판단할 때는 "사업주가 자신의 사업장에서 시행하는 건설공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재해 예방과 관련한 유해·위험 요소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관리 권한을 갖고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공사가 항만 핵심시설인 갑문의 유지·보수에 관한 전담 부서를 두고 있고, 정기 보수 공사에 관한 높은 전문성을 지닌 도급 사업주로 수급인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봤다. 대법원은 "공사는 갑문 정기 보수 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 자로 단순한 건설공사 발주자를 넘어 수급 사업주와 동일한 안전과 보건조치 의무를 중첩적으로 부담하는 산안법상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렸다.
공사가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점도 인정했다. 대법원은 "(공사는) 중량물 취급 시 사고 위험이나 추락 위험 방지를 위한 조치 등을 할 의무가 있는데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