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비상계엄에 관련된 현직 지휘관들이 속속 입을 열고 있는 가운데, 가장 주목받고 있는 주동자인 김용현 전 국방장관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자신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던 김 전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면직 재가로 '도주로'를 확보, 현 상황에 대한 타개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2차 계엄 시도 의혹이 불거지자 국방부는 관련 지휘관들을 직무정지하고 분리 파견 조치를 실시하는 동시에 주요 현역 관련자들에 대한 출국 금지를 신청했다.
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 전 장관은 이날 현재 한남동 공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택보다는 경호가 수월한 곳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에서 물러나더라도 1개월 정도는 공관에 머물 수 있다"고 전했다.
김 전 장관은 계엄이 해제된 4일 다른 국무위원들과 함께 윤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윤 대통령은 이튿날 오전, 김 전 장관의 사의만 받아들여 면직 처리했다. 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하지 않도록 조치한 것이다.
이로써 야권의 집중포화를 피한 김 전 장관은 5일 아예 출근하지 않았다. 이후 공관에 머물면서 기자들과 텔레그램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김 전 장관은 한국일보에 해외도피 시도 의혹과 관련, "정치선동일 뿐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민주당을 향해 여전히 각을 세웠고, 계엄 발령에 대한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법령과 절차에 따라 건의했다"고 답했다. 계엄군의 선거관리위원회 출동 이유에 대해선 "많은 국민들의 부정선거 의혹 제기에 따라 수사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시설 확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정리하면 이번 계엄은 적법한 것이며, 민주당은 여전히 정치선동을 하고 있고, 야권은 부정선거에 의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2차 계엄 의혹이 가시지 않는 건 군 내부에 여전한 '용현파' 때문이다. 육사 출신 예비역 인사는 "신임 국방부 장관에 지명된 최병혁 후보자는 '김용현의 아바타'에 불과하다"며 "김 전 장관은 현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실 경호처장 시절부터 군 안팎에 자신의 인맥을 잔뜩 심어놔 막후에서도 친정 체제를 갖출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이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바지 장관'을 내세웠다는 주장이다. 최 후보자는 육사 41기로, 김 전 장관(38기)과 학교를 같이 다녔다. 주사우디대사인 최 후보자는 이날 귀국했다.
국방부도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해 조치에 나섰다. 장관 직무대행인 김선호 차관은 "만약 계엄 발령에 관한 요구가 있더라도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절대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오후 1시 30분 부로 비상계엄 상황과 관련해 각 군 및 국직부대, 기관에 △비상계엄 관련 원본 자료는 보관하고, 폐기·은폐·조작 행위는 일절 금지 △검찰 등 내·외부 기관 수사에 성실히 임하고, 관련자료 요청에 적극 협조 △대외 접촉 시 관련 규정을 준수하여 시행 △병력 이동은 합참의장 승인 시에만 가능하고, 국직부대는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 승인 시에만 가능하다는 내용의 지시를 하달했다.
국방부는 계엄에 가담한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이상 육군 중장)을 각각 지상작전사령부, 수도군단, 국방부에 대기 조치 내려 직무를 정지했다.
하지만 이들의 직무대리로 지정된 인사의 면면을 놓고 논란이 적지 않다. 수방사령관에 김호복 중장, 특전사령관에 박성제 소장, 방첩사령관에 이경민 소장이 지정됐는데, 이 소장은 방첩사 1처장에서 참모장으로 승진한 방첩사 핵심 인물로 이번 계엄 사태와 무관치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육군총장은 직무정지 대상에서 빠졌다. 총장은 군령권 없이 행정만 책임지며 이번 계엄에서 수동적인 역할에 그쳤다는 게 국방부 측의 설명이지만 석연찮다. 군 검찰은 주요 지휘관 3명, 병력을 출동시킨 공수여단장(3명) 및 대령 지휘관(3명)과 함께 박 총장에 대한 출국금지를 법무부에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