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적 비상계엄 선포로 국가적 대위기를 초래한 윤석열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놀라울 지경이다. 4일 오전 계엄 해제 선언 이후 대외 일정을 중단한 그는 대통령실과 여권 인사들을 통해 계엄 선포는 자유민주주의 파괴 세력인 민주당에 경고를 보내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야당 탓을 한 것도 요상하지만, 국가비상사태 발생 시에 선포할 수 있다고 헌법이 규정한 계엄을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어서 충격적이다.
대통령실은 4일 주요 외신들에 보낸 입장문에서 계엄 선포와 해제가 “헌법을 위배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헌법주의자로서의 결단이었다”는 말도 5일 여권에서 흘러나왔다. 헌법의 계엄 요건을 충족하지 않은 점, 계엄사령부가 헌법에 없는 ‘국회의 정치활동 금지’를 명령한 점, 계엄군이 국회를 장악하려 한 점 등이 위헌적이라는 대다수 헌법학자들의 견해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대통령실은 국민의 삶과 경제에 미칠 피해를 고려해 3일 늦은 밤에 계엄을 선포했다고 외신에 밝혔다. 또 그날 국회의원들의 국회 출입을 통제하지 않은 것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통령실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재적 국회의원 과반 찬성으로 계엄이 해제됨을 알고 있었지만, 국회가 (계엄) 동의 여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국민을 극한의 공포에 떨게 해놓고 ‘사려 깊은 계엄’이었다고 포장이라도 하고 싶은 것인지 묻고 싶다. 경제와 안보를 계엄 명분으로 거론하는 것 역시 계엄 사태로 경제와 안보가 살얼음판 위에 놓였다는 점에서 어불성설이다.
윤 대통령은 7일로 예고된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일정 등을 감안해 대국민담화 발표 시기를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엄이 옳았다는 입장을 고수한다면 대통령 퇴진 요구 민심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국민 앞에 사과부터 하기 바란다.
정권의 공동책임자인 국민의힘의 대처도 민심과 동떨어져 있다. 한동훈 대표는 계엄이 위헌적, 위법적이라면서도 5일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동시에 윤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했다. 눈치 보기 전형이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민주당 폭거에 국회가 망가졌다”며 “탄핵안을 분명히 부결시키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존립 목적이 당명에 명기한 ‘국민’인지 ‘윤 대통령’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