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올해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발표 일정을 당일 돌연 연기했다. 수치 산정 과정에 오류가 있었던 것을 공표일이 돼서야 담당 직원의 실토로 알게 된 까닭이다. 국가 정책 방향 결정과 각종 연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표인 만큼, 통계청이 허술한 검증으로 신뢰도에 스스로 타격을 입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통계청은 5일 이날 정오로 예정했던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발표를 "수치 오류로 인해 보도계획을 변경한다"며 9일로 미뤘다. 이미 관련 최종 보도자료는 언론에 배포한 상황인 데다, 오전 10시 브리핑을 1시간 남짓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통계청에선 이날 공표 직전 결과를 재확인하는 과정에서야 문제를 인지했다고 한다.
가계금융복지조사는 가계의 자산·부채·소득·지출 등을 통해 재무 건전성을 파악하고 경제적 삶의 수준과 변화, 소득 분위별 분배 지표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공신력 있는 주요 국가승인통계다. 통계청과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이 공동으로 전국 2만여 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해 1년에 한 번 발표한다. 수치 오류로 급작스레 발표가 미뤄진 건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통계청이 설명한 전말은 이렇다. 가계금융복지조사는 조사자료와 행정자료 30여 종을 연계해 작성하는데, 여기서 데이터가 불명확해 연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 가구원은 산식을 적용해 추정한다. 하지만 지난해 바뀐 장기요양보험료 추정 산식을 통계 전문 프로그램에 입력하는 과정에서 담당 주무관의 착오로 분자 구성요소의 '%'를 빠트렸다는 것이다.
잘못된 결과값은 장기요양보험료가 포함되는 비소비지출은 물론, 처분가능소득과 소득 분배 지표와도 연결된다. 앞서 오류가 포함돼 배포한 자료에서는 소득 분배 지표가 소폭 악화한 것으로 나왔다. 통계청 관계자는 "결과값 자체는 교차검증이 이뤄지나, 전문적인 컴퓨터 언어로 산식을 입력하는 코딩은 한 명이 전담해 미진한 부분이 발생했다"며 "매뉴얼을 만들어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세 곳의 정부기관이 공동 발표하는 중요한 국가통계 자료의 오류가 검증 체계로 걸러지지 못 하고 담당 직원의 실토로 발견된 점은 시스템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최용석 부산대 통계학과 교수는 "공표 전 바로잡을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나, 영향력이 큰 국가통계엔 조금의 실수도 용납돼선 안 된다"며 "반복되지 않도록 상급자 관리 책임과 검증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