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도 희망을 쏘아 올린 한 해였다. 한강 작가의 아시아 최초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의 지성과 K출판이 이룩한 성취다. 시대를 막론하고 전쟁과 독재에 항거하고 진실과 자유를 향한 전초기지로서 출판의 역할을 증명했다.
지난달 29일 제65회 한국출판문화상 예심 심사를 위해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 모인 심사위원들은 "어려운 출판 환경에서도 우리 세계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책들을 꾸준히 선보인 한 해였다"며 "충분히 격려받아 마땅하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예심에 응모한 책은 지난해(1,117건)보다 늘어난 1,229종이었다. 사회 변화를 발 빠르게 포착한 대중적이면서도 품격 높은 책이 다수 눈에 띄었다. 특히 위기를 진단하고 대안을 찾고자 하는 사회과학서는 후보군이 비교적 도톰했다. 우리 사회 모순과 민낯을 극명하게 드러낸 세월호 참사를 다룬 '520번의 금요일'과 이태원 참사에 관한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는 심사위원단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풍성했던 교양서들과 달리 국내 학문 수준을 가늠하는 학술 부문에서는 "궁핍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아쉬움이 나왔다. 과학이나 인문 등 특정 분야에서 빈약했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전반적으로 부진했다는 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과 역사, 철학, 자연과학 등 분야에서 학술서로서 중요도에 이견이 없는 수작들이 발견됐다. 연구자가 집념으로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해 빚어낸 '세계철학사',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 '예고된 쿠데타, 8월 종파사건' 등에 심사위원들의 시선이 쏠렸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번역의 중요성이 강조됐지만 여전히 번역서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번역에 대한 투자와 번역가의 처우 등 고릿적 문제가 이어지면서 눈에 띄는 '대작'은 적은 편이었다. 편집에서도 과감하고 참신한 기획이 상대적으로 덜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어린이·청소년책은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부문 중 하나였다. 출판사의 고른 안배를 위해 '박하네 분짜',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가', '너와 나의 퍼즐' 등이 아깝게 제외됐다. 불황이 길어지다 보니 대형 출판사에 좋은 작품이 쏠리는 현상이 두드러진 것이다. 어린이책의 세계적 수준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반면 청소년 도서에 대한 아쉬움은 올해도 확인됐다. 과학책 등 전문성이 필요한 논픽션이 너무 적고, 문학에서도 타인에 대한 배타적 태도와 공격성을 독려하는 서사가 너무 많다는 게 문제로 지적됐다.
심사위원단은 숙고 끝에 저술(학술, 교양), 어린이·청소년, 번역, 편집 부문에서 10종씩 모두 50종을 추려냈다. '올해의 책'이라고 할 만큼 하나같이 대단한 성취를 이룬 수작들이다. 예심을 통과한 이들 50종을 대상으로 이달 중순 본심을 거쳐 분야별 최종 수상작 1종을 가려낸다. 최종 결과는 12월 말 본보 지면을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이번 심사는 7명의 심사위원이 예심과 본심을 함께 맡는다. 김수영 한양여대 교수,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 오은하 연세대 불문과 교수, 윤경희 문학평론가, 조영학 번역가, 표정훈 출판평론가,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등 학계와 출판계를 두루 아울러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자신 있게 권하는 '올해의 책'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