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역사·철학·자연과학 등에서 고른 결실… 수십 년 연구 빛나 [한국출판문화상]

입력
2024.12.07 04:30
12면
[제65회 한국출판문화상 예심]
올해의 학술서 10종


총 3,220쪽에 달하는 스케일로 압도하는 '세계철학사'는 한국인의 손으로, 그것도 한 명의 학자가 동서양을 아우르는 철학사를 집필했다는 점에서 우선 주목받았다. 다산 정약용의 독해를 바탕으로 실리학의 관점에서 '논어'를 새롭게 읽은 '다산 논어: 한국의 논어 1, 2'는 접근 방법이 참신했다는 평가다.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자료 등을 발굴해 쓴 'DMZ의 역사'와 김근배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를 필두로 한 연구진의 15년 연구 성과가 담긴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은 방대한 자료와 심층 연구가 돋보인 역작으로 꼽혔다. 조선시대 연구자가 50여 년 학문적 삶과 성과를 집대성한 '조선시대 양반과 선비'도 호평을 받았다.

북한사 대중화의 탁월한 성취로 평가된 '예고된 쿠데타, 8월 종파사건', 역사학의 주류에서 다루지 않던 주제를 세계사의 흐름에 앉힌 '매너의 역사'는 읽는 재미도 놓치지 않은 흥미로운 저작들이다. 가사·돌봄노동자를 통해 빈곤과 낙인의 사회사를 꿰는 '하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성찰하는 '휘말린 날들'은 현시점에 꼭 필요한 책들이다. 제60회 한국출판문화상 교양 부문을 수상한 사회과학자 양승훈의 신작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는 이번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산 논어: 한국의 논어 1, 2

김홍경 지음·글항아리 발행

다산 정약용이 1813년 완성한 '논어'에 대한 주석서인 '논어고금주'에 바탕을 둬 논어를 번역·해설한 책. 다산은 위나라 하안의 '논어집해'를 옛 주석(고주)으로, 송나라 주희의 '논어집주'를 현재의 주석(금주)으로 삼아 논어의 주석서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했다. 다산식 독해만의 차별성과, 다산이 논어를 독창적으로 해석한 배경은 무엇인지 설명한다.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

김근배·이은경·선유정 지음·세로북스 발행

15년간 연구를 통해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우리나라 과학의 토대를 만든 근현대 과학자를 발굴하고 삶과 자취를 추적했다. 최초의 화학자 리용규부터 위상수학의 권위자 권경환, 유기광화학 분야를 개척한 심상철까지 30명을 소개한다. 나비 박사로 알려진 석주명, 재미 물리학자 이휘소 등 제대로 몰랐던 인물들의 진면목도 발견할 수 있다.

▦DMZ의 역사

한모니까 지음·돌베개 발행

비무장지대(DMZ)의 역사를 본격 조명한 연구서. 한반도 정전체제의 성립과 DMZ의 탄생 순간에서부터 1960년대 DMZ 무장화의 과정, 냉전 경관의 형성, DMZ에서의 화해와 체제 경쟁 등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변화를 종합적으로 살핀다. 정전협정(문서), 비무장지대(공간), 유엔군사(행위자)라는 3개 핵심축으로 정전체제를 어떻게 종식할지 들여다본다.



▦세계철학사 1~4

이정우 지음·길 발행

2011년 '우리 학자가 쓴 철학의 진짜 역사'를 내세우며 시작해 13년 만에 4부작으로 완간. 원고지 1만8,000매 분량. 학자나 이론을 설명하되 당대 시대 상황에 얽힌 전체 맥락을 들려주는 데 더 방점을 찍고 있다. 이를 테면 20세기 정치철학을 자유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세 갈래로 나눠 살펴보며 오늘날 우리가 미래를 위해 숙고해야 할 과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조선시대 양반과 선비 1, 2

정진영 지음·산처럼 발행

조선시대 민중운동사와 향촌사회사 연구의 대가인 저자가 50여 년간 각종 문집과 편지 등 자료에 남아 있는 양반의 삶을 한데 모아 정리한 양반론의 총결산. 조선의 양반과 선비의 일상적 삶을 통해 역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구체성과 실증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당대 시대사 전체의 구조와 변화도 함께 조망한다.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양승훈 지음·부키 발행

조선소 출신 산업사회학자로 주목받은 저자가 조선업, 자동차산업, 석유화학산업까지 어우러진 '대한민국 산업수도'이자 '중산층 노동자 도시' 울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색하는 책. 동시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저물어 가는 산업'으로 치부되는 제조업의 현실과 성장 동력을 잃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관한 고찰이기도 하다.

▦예고된 쿠데타, 8월 종파사건

김재웅 지음·푸른역사 발행

북한의 국가 건설과 계급정책에 관해 연구해온 저자는 북한의 기원과 현실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북한 정치사의 최대 위기로 여겨지는 이른바 '8월 종파사건'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옛 소련 외무성이 작성한 문서, 소련 주재 북한대사 이상조가 남긴 자료 등을 분석해 이 사건의 배경과 전개 과정, 반기를 든 혁명가들의 사투를 짚는다.

▦매너의 역사

설혜심 지음·휴머니스트 발행

영국사를 전공한 연세대 사학과 교수인 저자가 유럽, 그중에서도 영국을 중심으로 매너의 역사를 추적한 책. 서구의 에티켓북과 처세서, 행동지침서, 편지, 매뉴얼 등 고대부터 20세기까지 생산된 예법서 100여 권을 분석해 그 정수를 책에 담았다. 인류가 매너를 발명하고 오랜 시간 유지해 온 이유를 밝힌다.

▦하녀

소영현 지음·문학동네 발행

문학평론가인 저자는 베이비시터, 요양보호사, 등·하원 도우미 등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도맡은 이들을 '하녀'의 21세기 변주로 간주한다. 봉건적 신분제와 근대 계급사회 최하층에 놓인 존재였던 하녀는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적 없었다는 것. 배제와 낙인의 신분 사회적 계보와 원리, 의미를 문학작품과 신문 기사 등을 통해 추적한다.

▦휘말린 날들

서보경 지음·반비 발행

의료인류학자인 저자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당사자에게 찍힌 사회적 낙인을 들춰낸다. 역사와 의료적 현실, 법 등을 넘나들며 바이러스를 둘러싼 낙인이 어떻게 사회적 박탈과 위험을 조성하는지 그 과정을 면밀히 쫓는다. HIV 감염자들은 숨거나 도망쳐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감염이라는 사건을 한발 앞서 겪은 사람일 뿐이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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