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나섰다. 반헌법적 비상계엄 사태로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유린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탄핵소추안은 5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돼 이르면 6일 새벽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탄핵안이 통과되면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올 때까지 윤 대통령 직무는 정지된다. 아울러 국가원수의 책무를 망각하고 무장 병력을 동원해 국회와 국민을 겁박했다며 윤 대통령을 내란죄로 고발했다.
심야 계엄 폭풍이 지나간 4일 각계에서 '하야' 압박이 빗발쳤지만 윤 대통령은 종일 두문불출했다. 이날 오후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 여권 수뇌부는 용산으로 쫓아가 긴급회동을 갖고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민주당의 폭주를 알리기 위해서 비상계엄에 나섰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거대 야당에 경고를 날리기 위한 최후의 카드로 계엄을 꺼내들었다는 취지다.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고도 대통령으로서 여전히 사태의 본질은 외면한 채, 무책임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장 야권에선 "민주당 밉다고 선포했다는게 말이 되냐. 계엄이 애들 장난이냐"(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는 반발이 터져나왔다.
윤 대통령은 5일 오전 비상계엄 관련 2차 대국민담화에 나선다. 국민의힘은 김용현 국방부 장관 해임과 내각 총사퇴를 결의한 반면, 윤 대통령 거취에 대해선 침묵했다. 국무위원 전원과 대통령실 참모들이 앞다퉈 사의를 표명하면서 국정은 사실상 올스톱됐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등 야6당은 이날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의 의결로 비상계엄 사태를 해제한 지 10시간 만의 속도전이다. 윤 대통령이 본인과 김건희 여사의 불법 행위에 대한 특검을 회피하고자 절차와 요건도 갖추지 않은 비상계엄을 위법하게 남용,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중대범죄를 저질렀다고 소추안에 적시했다.
헌법의 최종 수호자인 대통령이 무력으로 국회를 마비시키고 국민의 기본권을 심대하게 침해한 건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라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국민이 준 권력으로 대통령 본인과 아내를 위한 친위 쿠데타를 벌였다"며 "국민에게 총칼을 든 대통령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더 이상 참을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 함께 싸우자"고 호소했다.
탄핵안 통과에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200명)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범야권 의석수(192석)를 다 합쳐도 국민의힘에서 최소 8명이 동참해야 가결된다. 2016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안 처리과정에서 여당이던 새누리당 의원들이 찬성으로 돌아서며 결정타가 됐다. 이에 민주당은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내란 음모의 부역자로 남고 싶지 않다면 탄핵에 동참하라"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여권은 버티기에 들어갔다. 윤 대통령 중도 하차에도 일단은 선을 긋는 분위기다. 국민의힘은 오전 내내 비상의총을 열었지만, 내각 총사퇴와 김 장관 해임을 거론하는 데 그쳤다. 친윤석열(친윤)계의 적극 방어에 막혀 윤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문제조차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여당은 이날 심야 의총에서 윤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반대 당론'을 채택했다. 탄핵안이 보고된 5일 본회의에도 불참했다. 윤 대통령이 이대로 물러나면 정권을 야권에 헌납한다는 판단에서다. 지금까지 안철수 의원만 "질서 있게 물러나라"며 목소리를 냈을 뿐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윤 대통령과 한 대표 등은 용산회동에서 진지하게 현 상황에 대해 논의했고, (참석자들의) 견해차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대국민 메시지를 내고 "책임을 통감한다"며 수습에 나섰다. 그러면서 "내각은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일상이 한 치 흔들림이 없도록 모든 부처의 공직자들과 함께 소임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불법 비상계엄을 추가로 발동하거나 북한과의 국지전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며 계엄상황실을 구성키로 했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야당 의원들은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24시간 국회를 지키는 비상대기에 돌입했다. 전국 각지에선 윤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야권 관계자는 "박근혜 국정농단 이후 8년 만에 탄핵열차가 다시 출발했다"며 "윤 대통령 스스로 물러서지 않는 한 멈춰 세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