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여파로 대한민국 외교 일정들이 차질을 빚고 있다.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있는 우리나라 재외공관에서의 각종 행사가 하나둘씩 취소되는가 하면, 주요 동맹·협력국에서는 외교 채널을 통해 심각한 우려를 전해오기도 했다. 예정됐던 울프 크리스터손 스웨덴 총리의 방한, 협의 중이었던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방한도 잠정 취소됐다.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부터 미국 영국 일본 호주 등 주한공관에서는 각종 외교채널을 통한 설명 요청과 우려가 쏟아졌다. 한 주한공관 인사는 "모든 채널을 동원해 (한국 정부기관에) 접촉을 시도했지만, 어떤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핵심 동맹국인 미국도 소통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파악됐다. 비상계엄 선포 소식에 급히 우리 외교부에 접촉을 시도했지만, 상당 시간 주한미국대사관과 미 국무부에 답변하지 못했다고 한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관계자와 소통은 국회 결의에 따라 계엄이 해제된 직후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우려스러운(concerning) 계엄령 선포에 관한 방향을 바꿔 계엄을 해제하는 한국 국회의 표결을 존중한 것에 대해 안도한다"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의 발언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한 불만이 담긴 것이라는 해석이다.
주요 외교 일정도 속속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4, 5일 예정됐던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 및 제1차 NCG 도상연습(TTX)이 무기한 연기됐다. 주한미군사령부는 아예 부대 외 필수 방문 지역이 아니면 이동 자제를 권고했다.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장관과 이시바 총리의 방한 일정도 사실상 불발됐다. 15~16일로 추진됐던 스가 요시히데 일본 전 총리의 방한은 보류됐다. 스웨덴도 오는 5일부터 7일까지 예정됐던 울프 크리스터손 총리의 방한 일정을 전격 취소했다. 현재 방한 일정을 소화 중인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키르기즈공화국) 대통령 측에서도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민국 재외공관에서는 혼란이 감지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정치상황에 동요됨 없이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을 지시하는 지침이 본부와 전 재외공관에 전달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수 재외공관에선 필수 업무인 영사 조력 업무를 제외한 공관장 행사 일정을 대부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역시 닷새간 독일과 스페인을 방문 예정이었던 김홍균 1차관은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길에 올랐고, 강인선 2차관 또한 아랍에미리트(UAE) 출장 일정을 전격 취소했다. 조태열 장관은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사의를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