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AI와 비상계엄

입력
2024.12.04 17: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역대 정권에서 장관을 지낸 한 인사가 사석에서 흥미로운 말을 했다. 내년 1월 들어설 2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정부 개혁을 책임진 일론 머스크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궁금하다고 했다. 해당 인사는 230만 명에 달하는 연방정부 공무원에 대한 머스크의 물갈이 작업이 어떤 방식으로든 태평양을 건너오길 바랐다. 성패 여부를 떠나, 정쟁과 ‘레드 테이프’에 막혀 지지부진한 대한민국 공공부문 개혁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머스크와 피터 틸 등 트럼프를 도운 미국의 신흥부호들은 국가 개조와 변화의 추구에 한계를 두지 않는다. 그들은 현대판 실용주의로 무장했다. 화성 거주, 영생 추구, 제한 없는 인공지능(AI) 활용도 감행할 태세다. 결제서비스(페이팔) 창업으로 자수성가한 피터 틸은, "인간 불멸 기술이 곧 실현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오브리 드 그레이(Aubrey de Grey)의 연구에 수천억 원을 지원 중이다. 피터 틸이 이끄는 빅 데이터 프로세싱 업체인 팔란티어는 미래 전장에서 사용될 AI 개발도 검토 중이다.

□ 다만 수명 연장에서, 머스크는 피터 틸과 다르다. 컴퓨터와 인간의 뇌를 소통시키는 방법을 모색하는 뉴럴링크를 창업했지만, 인간 기억을 컴퓨터에 이식하는 것까지는 추구하지 않는다. 뇌의 기능을 컴퓨터로 대신해 각종 마비 증상과 실명, 우울증, 정신분열증 등 의학적 치료가 불가능했던 신경질환 해결이 목표다. 오히려 인위적 수명 연장에는 반대한다. 그렇다고 인간 존재의 유한성에 대한 철학적 반성 때문은 아니다. 나이 든 노인일수록 아집에 빠지고, 사회 발전에 거스르는 경향이 크다는 게 이유다. 한마디로 노인 비중이 낮은 나라를 꿈꾸는 셈이다.

□ 머스크가 미국 역사상 가장 늙은 대통령(트럼프)을 지원한 것도 치밀한 계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의 장악력이 약화한 임기 하반기에는 자신의 뜻대로 미국과 세상을 바꾸려는 욕심이 흉중에 가득하다는 것이다. 졸렬한 무더기 탄핵과 반민주적 비상계엄이 국난 극복의 방법으로 포장되는 한심한 상황 때문일까. 과격해 보이지만, 첨단 기술력으로 변화를 꿈꾼다는 점에서 미국적 리더십이 부럽다.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