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어젯밤 용산 대통령실에서 긴급 브리핑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비상계엄 선포는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45년 만이자, 1987년 민주화 이후 초유의 사태다.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정치권뿐만 아니라 국민은 당혹스러울 뿐이다. 과거 군사 독재 정권 시절에나 가능했던 비상계엄이 민주주의가 꽃을 피운 이 시대에 필요한 조치로 볼 수 없다. 수십 년을 가꿔온 민주주의를 일거에 퇴행시키는 행위다.
윤 대통령은 "국회는 우리 정부 출범 이후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 소추를 발의했고 지난 6월 22대 국회 출범 이후에도 10명째 탄핵을 추진하고 있다"며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없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건국 이후에 전혀 유례없던 상황"이라고 운을 뗐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고 있는 검사 및 장관, 감사원장 등에 대한 탄핵 시도와 감액 예산안을 국회 예결위에서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을 사법·행정부 마비 시도라고 규정했다. 이는 야당의 입법 독재로 "자유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행위이자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며 비상계엄 선포의 근거로 제시했다.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이기는 하나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전시·사변이나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 적과 교전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돼 행정 및 사법 기능 수행이 현저히 곤란할 경우에 선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종북 반국가세력 척결'을 강조했으나, 철 지난 색깔론에 근거한 비상계엄에 공감할 국민은 없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조차 "비상계엄은 잘못된 것이고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힌 것도 이에 대한 방증이다. 여야를 불문한 정치권이 수긍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헌법 77조에 따르면 계엄을 선포하면 대통령은 국회에 통고해야 하고,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지체 없이 해제해야 한다. 국회도 4일 새벽 190명의 여야 의원이 긴급 본회의를 열고 전원 일치 찬성으로 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더욱이 헌법 89조는 계엄 선포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어제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앞서 국무회의가 열렸는지도 불분명한다. 만약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았다면 계엄 선포 요건조차 충족하지 않는 셈이다. 한 대표가 단호하게 "위법적이고 위헌적인 비상계엄"이라고 밝힌 이유일 것이다.
한밤중에 이루어진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인해 환율이 급등하는 등 경제 사회적 혼란이 예고되고 있다. 특히 외신들도 긴급 타진하는 등 대외 신인도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극도의 정치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정도로 현 시국이 국가 비상사태라는데 동의할 국민은 없다. 윤 대통령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서둘러 수용하는 게 국가적 대혼란을 막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