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벌었지만 여야의 행태는 여전했다. 내년도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인 2일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여지없이 샅바 싸움을 이어갔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합의 처리 시한으로 제시한 10일까지 일주일가량 남았다. 여야 원내 사령탑의 담판이 필요하지만 아직은 불투명한 상태다.
양당 원내대표는 이날 별도로 만나지도 않았다. 대신 번갈아 우 의장을 찾아가 항의의 뜻만 전달했다. 여당이 야당 단독의 예산안 감액 처리에 반발해 협상을 보이콧했기 때문이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 뒤 기자들에게 "민주당의 선 사과, 강행처리한 예산안 철회가 선행되지 않으면 어떤 추가 협상에도 응할 필요가 없다"며 "의원 전원이 동의를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오는 4일 국회에서 당원들과 규탄집회를 열 예정이다. 원내 관계자는 "이번에 민주당이 요구하는 증액안을 받아주면 해마다 이런 식으로 대응할 것 아니냐"며 "받고 싶어도 못 받는 수를 던져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아쉬울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예결위에서 정부안이 아닌 야당 수정안을 처리해 본회의에 부의해 놓은 만큼, '시간은 민주당의 편'이라는 자신감이 깔려있다. 민주당은 추가 감액 수정안도 검토 중이다. 원내 관계자는 "지금 감액안은 맛보기"라며 "진짜 아픈 부분은 건들지도 않았다"고 엄포를 놨다. 민주당은 정부 예산안에서 이미 4조1,000억 원을 깎았는데, 추가로 줄일 부분을 더 찾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퇴로 없이 맞서자 '본협상을 염두에 둔 블러핑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 합의 없이 최종 예산안이 처리된 전례가 없는 만큼, 막판 반전을 기대하고 있다. 2014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최장 지각'이란 오명을 썼던 2023년도 예산안의 경우, 데드라인을 12월 2일→9일→15일로 세 차례 연장한 뒤 24일에서야 타협점을 찾았다. 결국 여야 모두 당장은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전날 "정부에서 수정안을 내 저희와 협상하면 된다"며 "진지한 협상이 가능하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예산 업무에 정통한 국회 관계자는 "각종 필수 예산이 삭감됐을 때 최종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정부·여당"이라며 "이날 감액 예산안 처리를 막았다는 건 결국 협상을 하겠단 뜻 아니겠나"라고 짚었다.
'지역구 예산'을 챙기는 건 이해관계가 같은 여야 의원들의 압박도 변수로 꼽힌다. "저쪽은 지역구 의원이 160명, 우리는 90명이다. 누가 아쉽겠나"(국민의힘 관계자), "지역구 예산 못 챙겨도 특수활동비는 깎도록 양해를 구했다"(민주당 관계자)며 아직은 서로 시치미를 떼지만 결국 지역 유권자들의 요구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윤석열 정부 들어 여야 정쟁이 극심해지며 예산안 처리는 점점 늦어지는 추세다. 선진화법 이후 국회가 법정시한을 준수한 건 두 차례(2014·2020년)에 불과하다. 다만 박근혜 정부 땐 3시간 남짓 초과한 것에 불과했고 문재인 정부 때도 열흘을 넘긴 적이 없었다. 그러나 현 정부 첫해인 2022년에는 선진화법 이후 예산안을 가장 늦게 처리(12월 24일)했고, 지난해 역시 법정시한을 19일이나 넘긴 12월 21일에서야 예산안을 통과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