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훈격 재평가해야"··· '헤이그특사' 이상설 서훈 승격 나선 진천군

입력
2024.12.02 18:10
'서전서숙' '한흥동' '성명회'···
독립운동 선구, 헤이그특사 대표
위대한 업적에도 2급 서훈
"공적에 맞게 훈격 상향해야" 여론
진천군, 내년 광복 80주년 맞아
1급 대한민국장 승격 추진
진천 주민들은 범군민 서명운동
송기섭 "독립운동가 정당한 평가는
후손의 의무이자 나라 사랑의 길"



보재 이상설(1870~1917)선생. ‘헤이그 특사’로 알려진 그는 초기 독립운동의 기틀을 닦은 인물이다. 간도 지방에 최초 민족교육 기관인 ‘서전서숙’을 세워 항일 민족교육에 앞장섰다. 북만주에 해외 독립운동 기지 ‘한흥동’을 개척하고, 동포와 만든 ‘성명회’를 통해 일제 규탄에 앞장섰다. 선생은 상하이 임시정부보다 5년이나 앞선 1914년 해외 첫 망명정부인 ‘대한광복군정부’를 세우기도 했다. 27세에 성균관장을 지낸 그는 수학 물리 외국어에도 능통한 신학문의 선구자였다. 고종은 국외 망명 생활을 하던 그를 네덜란드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할 ‘헤이그 특사’ 대표로 임명했다. 이준·이준위 선생과 함께 헤이그 특사로 나선 선생은 일제의 방해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세계 곳곳에 대한독립의 당위성을 알렸다.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의 서훈을 승격하자는 운동이 그의 고향 충북 진천에서 본격 시동을 걸었다.

진천군은 “보재 선생의 서훈이 공적에 비해 낮아 상향해야 한다는 지역 여론에 따라 서훈 상향을 추진하고 있다”고 2일 밝혔다. 선생의 서훈은 건국훈장 대통령장(2급). 지난 1962년 추서됐다. 광복 80주년인 내년에 선생의 서훈을 대한민국장(1급)으로 승격시키는 것이 군의 목표다.

진천군은 지역 정·관계와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김영환 충북지사와의 도민 대화(4월)에 이어 임호선 지역구 국회의원(5월) 초청 간담회에서 서훈 승격을 제안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주민 서명 운동도 시작됐다. 지난 10월 생거진천문화축제에서 시작된 서명은 연말까지 진행된다. 이어 내년에는 온라인 서명으로 전환, 범도민운동으로 확산시킬 예정이다.

진천군은 주민 서명부를 토대로 국가보훈부에 서훈 상향 민원을 공식 제기할 방침이다. 보재 선생의 순국일(3월 31일)을 전후해서는 국회동의 청원을 추진하기로 했다.

서훈 승격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진천군은 정부의 독립국가유공자 재평가 작업에 기대를 걸고 있다. 국가보훈부는 지난 4월 ‘독립운동 가치와 합당한 평가 및 기억계승 방안’을 발표하고, 현재 관련 자료와 여론을 수집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학계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의 훈격 재조정 의견이 개진된 지 오래다. 공적에 비해 훈격이 저평가된 이들이 많아 재평가 작업과 함께 역사적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장으로 서훈이 상향된 사례는 여운형(2005년), 유관순(2019년), 홍범도(2021년) 단 3명 뿐이다. 여운형·홍범도 선생은 정부 주도로, 유관순 열사는 3·1운동 100주년 때 국민적 여론에 힘입어 추가 서훈된 바 있다.

진천군은 이상설 선생의 업적을 재평가하고 국민 공감대를 끌어내면 추가 서훈이 가능하다고 본다. 군에 따르면 선생은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유고나 유품 등 관련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다. 선생은 이국 땅에서 임종할 당시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을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마라”고 유언했다. 동지들은 유언대로 시신과 유품을 화장해 아무르강에 재를 뿌렸다.



이상설 선생 서훈을 승격해야 한다는 여론은 2017년 순국 100주년 추모제에서 촉발했다. 이상설선생기념관 건립 등 숭모 사업을 이끈 송기섭 진천군수가 “독립운동의 독보적 선구자인 보재 선생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언급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

진천군은 선생 생가터 인근에 이상설기념관을 건립, 지난 3월 31일 개방했다. 이곳엔 높이 33.1m의 초대형 국기게양대를 세웠다. 게양대 높이는 선생이 순국일을 기념해 제작했다. 기념관 건립에는 6년간 모은 군민 성금(13억 3,600만원)이 투입됐다. 송 군수도 700만원을 기탁했다.

선생 추모 사업은 국내·외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진천군은 선생의 활동 무대였던 중국, 러시아 지자체 등과 공동으로 추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당대 최고 수학자였던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우석대와 ‘보재 이상설 수학교실’을 운영 중이다. 군내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이상설 선생 유적지를 돌아보는 역사 탐방도 지원하고 있다.

송기섭 군수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정당한 평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후손의 의무”라며 “진천의 위대한 정신 유산인 이상설 선생을 재조명하고 바로 세우는 것이 진천군민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높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광복 80주년인 내년이 서훈 승격의 골든 타임이라고 본다”며 “결실을 맺기 위해 서명운동, 정부 설득, 국회동의 청원 등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한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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