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쏘아 올린 비상계엄 유탄에 한국 경제 앞날이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국회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폐기된 데 따른 여야 갈등·정국 혼란은 이른 시일 내에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 부처는 합동 성명을 통해 "경제문제만큼은 여야 관계없이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야당은 "내란 공범 내지 방조범"이라고 맞선 형국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14개 관계 부처 장관들은 8일 합동 성명을 통해 "2025년 예산안이 내년 초부터 정상적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신속히 확정해 주시길 요청드린다"며 "경제안정을 이루고 대외 신뢰를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도 국회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경제부총리인 제가 중심이 되어 경제팀이 총력을 다해 경제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며 "무엇보다도 대외신인도가 중요하다"고 절박감을 호소했다.
앞서 내각 총사퇴 주장이 나오기도 했으나, 대내외 경기 하방 요인이 산재해 있어 국정 공백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한 정부는 국회를 향해 조속한 예산안 처리,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법 폐지 등 민생법안 처리를 요청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함께 대국민 담화로 "예산이 확정돼 각 부처가 제때 집행을 준비해야만 어려운 시기 민생 경제를 적기 회복시킬 수 있다"며 "정부가 먼저 몸을 낮추고 협조를 구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야당 단독으로 의결된 '감액 예산안' 대신 각종 증액 사업을 반영한 예산안을 마련해 달라는 요청이자, '지역화폐'를 비롯해 야당이 주력하는 사업 예산도 전향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부의 호소에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탄핵소추안 폐기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의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을 언급하며 국정 수습책으로 당정 공동 국정 운영을 발표하자 야당이 "위헌 통치"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대통령 직무 정지만이 유일하게 헌법에 정해진 절차"라는 입장인 야당으로서는 예산안과 각종 부수 법안 처리를 우선순위에 올릴 가능성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윤 대통령이 탄핵될 때까지 무한 반복하겠다는 입장도 변함없다.
앞서 단독 처리한 감액 예산안을 고수하던 민주당은 이날 정부·여당 대국민 담화 이후 추가 삭감까지 예고한 상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내란 공범 내지 방조범인 정부·여당이 국정을 운영할 근거가 없다"며 "변화한 상황을 반영해 추가 삭감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 예산안에서 4조1,000억 원을 삭감한 민주당은 추가로 대통령 경호 예산과 대통령실 여론조사 예산 등 7,000억 원 상당을 더 삭감할 것으로 예고했다.
다만 국정 혼란 속에서도 경제는 이어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질 경우, 금투세 폐지와 가상자산 소득 과세 유예안 등 이미 여야가 합의한 경제 법안들은 본회의가 열리면 언제들 처리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정국 불안이 경제 불안으로 연결되는 점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소비·투자 등 내수 부진의 골이 깊어질 조짐을 보이는 데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출범으로 대외 불확실성까지 커져 내년부터 1%대 저성장이 예견되고 있지만 긴밀한 대응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급기야 이날 민간 연구기관(현대경제연구원)에서는 내년 우리나라가 1.7% 성장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왔다. 잠재성장률(2%)은 물론 한국은행의 전망(1.9%)보다 낮다.
역대 최장 감소 중인 소매판매 등 소비는 더 위축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2016년 소비자심리지수는 10월 102(100 이상이면 낙관)였으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돌입에 지속 하락해 이듬해 1월 93.3까지 떨어졌다. 탄핵으로 불확실성을 해소,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까지는 반년이 소요됐다. 저성장으로 접어드는 기로에 있다는 점에서 앞선 탄핵 국면보다도 상황은 좋지 않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내수 활성화를 위한 입법 진행이 어려워진 데다, 기업 투자 전망도 좋지 않다"며 "이 상태가 지속되면 일자리, 소득 자체가 줄어 내수 회복은 더욱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다행히 대외신인도 척도인 3대 신용평가사(피치·무디스·S&P)는 계엄 사태가 펀더멘털에 미치는 영향이 아직 제한적이라 보고 한국 신용등급을 조정하진 않았다. 다만 피치와 무디스는 '정치적 위기 장기화로 정책 결정 효율성, 경제적 성과가 퇴보하고 재정이 악화하는 경우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