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가 선물 같던 시절이 있었다. 1970~80년대 강원도 산골 아이들은 학교 공부를 마치면 산으로 올라갔다. 작대기를 들고 나뭇가지, 바위틈에 내려앉은 삐라를 찾았다. 주운 삐라를 학교에 가져가면 공책, 연필, 크레파스 등 귀한 학용품을 상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꼭 지켜야 할 일도 있었다. 삐라를 절대 읽지 말 것. 호기심에 한쪽 눈만 실처럼 뜨고 봤던 붉은색 그림과 글씨가 아스라이 어른거린다.
나이 지긋한 세대의 추억 속 삐라가 서울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다. 지난주 북에서 서른두 번째 쓰레기 풍선들이 날아왔다. 풍선 소리만 들어도 지긋지긋할 정도다. 풍선 속 삐라엔 무기 성능을 과시하는 섬뜩한 내용이 담겼단다. 서울 불바다, 전쟁 나면 생존 확률은 0, 1분 25초 만에 극초음속미사일 서울 타격…. 삐라는 상대의 속을 긁어 불쾌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다. 표현이 유치하고 거친 이유다.
세계 최초의 삐라는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도망친 노예를 잡기 위해 거리에 뿌린, 파피루스에 쓴 삐라다. 광복 직후 혼란스러웠던 우리 땅 곳곳에도 삐라가 뿌려졌다. 좌우 이념이 날카롭게 맞섰던 시절, 삐라는 세력을 넓히는 수단이었다.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데도 삐라가 큰 역할을 했다. 한국전쟁 땐 유엔군이 엄청난 양의 삐라를 뿌렸다. 공산군의 귀순과 항복을 권유하는 내용이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삐라를 '전단(傳單)의 잘못'으로 설명한다. 북한에선 우리의 표준어 격인 문화어로 인정하고 있다. 삐라의 어원이 궁금하다. 명확하지 않지만 전단, 벽보, 광고 등을 뜻하는 영어 빌(bill)이 일본인의 발음을 거치며 변형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일본에서 빌이 ‘비라’(ビラ)로 발음됐다가 우리나라로 건너오면서 '삐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1995년 당시 문화체육부가 광복 50돌을 기념해 ‘일본어투 생활용어 순화자료’를 내면서 '삐라'는 전단으로 바뀌었다. 이후 좀 더 쉬운 말 ‘알림 쪽지’로 순화했다. 그런데 말맛이 많이 달라진 탓일까. 정치적 선전이나 군사용 표현으로 쓰기엔 뭔가 어색하다. 삐라와 비슷한 뜻의 ‘찌라시’도 일본말 ‘지라시'가 변한 말이다. 지라시는 "선전을 위해 만든 종이 쪽지"라는 뜻으로 국어사전에 올랐다.
중국 춘추시대 전략가 손자는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심리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21세기 한반도에선 아직도 심리 전쟁을 치르고 있다니, 참으로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