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시아스, 라파

입력
2024.12.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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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두 명의 선수가 있다. 한 명은 유럽의 귀족 같은 고고한 이미지에 얼굴도 멀끔하게 생겼다. 플레이 하나하나가 발레리나의 몸짓같이 우아하고 품위 있으며, 영리한 두뇌 플레이도 가능하다. 축구, 스키, 수영, 핸드볼, 배드민턴, 탁구 등 접해본 모든 스포츠를 잘했다. 말도 잘하는데, 특히 사려 깊은 단어 선택과 비유 구사 능력도 뛰어나다.

다른 선수는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다. 모든 플레이에는 힘이 넘쳐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종횡무진 경기장을 뛰어다닌다. 그의 경기를 보고 있자면 감탄이 절로 난다. 인간이 아니라 한 마리 들짐승을 보는 것 같다. ‘황소’ ‘검투사’라는 별명만으로도 그가 선수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대번에 알 수 있다.

당신은 둘 중 누구를 응원하겠는가.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와 ‘흙신’ 라파엘 나달이다.

나달이 정든 라켓을 내려놓았다. 평생의 라이벌인 페더러가 코트를 떠난 지 2년 만이다. 나는 백조의 날갯짓이 연상되는 '우아한' 백핸드 스트로크에 매료돼 20여 년 동안 페더러를 응원해왔다. 테니스를 예술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렸다는 찬사를 받았던 그에게 적수는 없어 보였다.

2004년 3월 나스닥-100 오픈(현 마이애미 오픈) 3라운드 경기에서 빨간 민소매 셔츠에 구릿빛 이두박근을 자랑하며 코트로 들어선 18세 장발 소년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갓 세계랭킹 1위 자리에 오른 페더러는 ‘소년’ 나달에게 2-0(6-3 6-3)으로 무참하게 깨졌다. 스포츠 사상 최고의 라이벌 중 하나로 꼽히는 페더러와 나달의 맞대결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페더러 팬 입장에서 나달이라는 존재는 큰 즐거움과 동시에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둘은 총 40차례 맞붙었는데, 나달이 24번이나 이겼다. 간혹 ‘나달만 없었으면 페더러가 더 많은 메이저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가정을 하곤 한다.

하지만 나달의 삼촌이자 코치였던 토니 나달은 여기에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페더러에게 인생 최고의 선물은 나달이었다”고. 페더러도 은퇴하는 나달에게 편지로 “너로 인해 나는 내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열심히 훈련하게 됐어. 조금이라도 유리해지길 바라면서 내 라켓 헤드 크기까지 바꿨을 만큼. 너는 내가 경기를 훨씬 즐기도록 만들었어”라고 고백했다. 그래서 페더러 팬들은 평생의 라이벌인 나달을 아끼고 존경한다. 나달의 은퇴 소식을 경쟁자의 몰락이 아닌 또 다른 영웅과의 아쉬운 이별로 받아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달이 위대한 이유는 선수 생활 내내 부상을 안고 뛰었음에도 메이저대회 22차례 우승이라는 업적을 남겼다는 것이다. 나달은 19세 때부터 발바닥 관절이 변형되는 희소병을 앓았다.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특수 깔창과 진통제로 통증과 맞서 싸웠다. 엄청난 운동량을 바탕에 둔 그의 플레이는 허리와 무릎, 발목 등 관절에도 큰 무리를 줬다.

그럼에도 24년 동안 매 경기 최선을 다해 뛰었다. 도저히 받을 수 없을 것이라 여겨지는 공도 쫓아가 쳐내고, 쓰러져도 곧바로 일어나는 투혼이 담긴 그의 플레이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나달이 끝까지 짜냈던 땀방울은 오래도록 많은 이가 그리워할 것이다. 나달의 은퇴 경기가 열린 스페인 말라가에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페더러 팬인 내가 나달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그라시아스, 라파'(Gracias, Rafa·고마워요, 라파)

김기중 스포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