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 중인 의사단체들이 정부가 의대 증원에 대한 입장 변화를 보여주지 않으면 탈퇴하기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야당과 의사협회, 전공의단체가 불참해 ‘반쪽짜리’라는 오명 속에 가동되던 협의체는 이달 11일 출범 이후 불과 3주 만에 와해될 위기에 처했다.
의료계 최대 학술단체인 대한의학회는 29일 오전 회의를 열어 여야의정 협의체에 계속 참여할지 여부를 논의했다. “즉각 탈퇴” 주장까지 나올 정도로 협의체에 부정적인 의견이 많아 탈퇴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협의체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최종 결정은 잠시 보류했다. KAMC도 이날 오후 7시 의대 학장단 회의를 열어 협의체 참여 중단을 논의했다.
여야의정 협의체는 최근까지 세 차례 전체회의를 열었지만 내년 정원 감축을 요구하는 의료계와 2026년 정원부터 재논의를 제안한 정부 입장이 맞서면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협의체를 주도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최근 경북 국립의대 신설을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의대 신설을 의대 정원 확대로 받아들이는 의사계에서 불만이 고조됐다. 전공의와 의대생까지 규합한 대한의사협회(의협) 비대위가 협의체 탈퇴를 거듭 종용한 점도 대한의학회와 KAMC에 압박으로 작용했다.
대한의학회 관계자는 “협의체 논의에 아무런 진전이 없는 데다 한 대표가 사태 해결에 진정성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협의체에 계속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며 “KAMC 회의 결과가 나온 이후 두 단체가 신중히 협의해 협의체 탈퇴 방식이나 시기 등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 1일에는 여야의정 협의체 4차 회의가 예정돼 있다. 다음 달 6일 수능시험 성적이 발표되기 전 마지막 회의다. 대한의학회와 KAMC도 일단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의학회 관계자는 “정부가 전향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마지막 회의가 될 것”이라며 “정부가 의료계와 대화했다는 명분을 쌓는 데 이용당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여야의정 협의체가 좌초하면 어렵게 물꼬를 튼 대화는 다시 단절될 가능성이 크다. 의협 비대위와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내년 의대 증원 철회는 물론이고 내년 복학할 의대생 교육을 위해 기존 정원까지 아예 한 명도 뽑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협상파가 대화에서 발을 빼면 강경파가 힘을 얻게 돼 사태 해결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