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별 따기 마일리지 대란

입력
2024.12.01 16: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영미 문화권에서 쓰는 거리 단위인 마일(mile)은 원래 로마시대 병사들의 ‘1,000걸음’이 어원이다. 1마일은 1.6㎞이니 실제로는 2,000보폭 정도다. 항공업계에서 탑승 실적에 따른 마일 수인 마일리지(mileage)를 처음으로 적립할 수 있도록 내놓은 곳은 1979년 텍사스항공과 80년 웨스턴항공이다. 종이 쿠폰 방식이었던 걸 컴퓨터에 회원번호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쌓이도록 바꾼 건 81년 아메리칸항공이다. 이후 전 항공사로 확대됐다.

□ 당초 항공 마일리지는 유효기간 없이 평생 원하는 때 쓸 수 있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유효기간을 두기 시작한 건 2008년이다. 마일리지 누적에 따른 충당금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소비자 권익 침해라는 반발이 컸지만 결국 마일리지 유효기간은 10년으로 줄었다. 이에 따른 마일리지 소멸이 2019년 말 다가왔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자 유효기간이 연장됐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는 이런 연장도 끝나 소멸 전 반드시 써야 하는 상황이다.

□ 문제는 마일리지로 예약할 수 있는 항공권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성수기 인기 노선 예약은 불가능한 데다 평소에도 좋은 시간대는 하늘의 별 따기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전용 쇼핑몰에서 마일리지를 쓰려 해도 살 만한 상품이 없고 그나마도 품절이다. 합병을 앞두고 제휴사와 잇따라 계약을 해지한 아시아나는 더 심하다. 그럼에도 마일리지를 써야 하는 고객이 몰리며 이젠 접속도 어렵다.

□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고객 불만이 치솟자 제주 특별기를 띄우고 일부 항공편 잔여석도 마일리지로만 판매하겠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모두 합해 5,000여 석에 불과하다. 3조5,000억 원도 넘는 전체 마일리지 금액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여전히 예약대란이다. 생색내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 저렴한 경쟁사가 있는데도 마일리지를 위해 두 항공사를 고집해온 이들은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두 항공사는 마일리지 자연 소멸만 바라는 눈치다. 합병 승인으로 독점 체제가 되면 횡포는 더 심해질 수 있다.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마일리지 항공권을 대폭 확대하는 게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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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