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형사재판소(ICC) 검찰이 미얀마 군사정권 수장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이슬람계 소수민족 로힝야족을 상대로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혐의다. 그러나 영장이 발부된다 해도 사실상 법정에 세울 강제 수단이 없는 탓에 실효성 없는 조치라는 한계도 분명하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카림 칸 ICC 검사장은 27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광범위하고 독립적이며 공정한 조사 결과 흘라잉 사령관 겸 미얀마 대통령 대행이 반인륜 범죄에 대한 형사적 책임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흘라잉 사령관은 2021년 2월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이 이끌던 민주 정부를 축출하고 정권을 잡았다. 그는 2017년 로힝야족 학살 사건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로힝야 문제로 미얀마 고위 공직자에게 체포 영장이 신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장 발부 여부는 ICC 판사들이 결정한다. 통상 청구 판결에 약 3개월이 소요된다.
무슬림인 로힝야족은 불교도가 다수인 미얀마에서 오랜 기간 탄압받아왔다. 특히 2017년 8월 미얀마군이 대대적인 ‘로힝야 소탕 작전’을 벌이면서 당시 수천 명이 목숨을 잃고 약 75만 명이 방글라데시 남동부로 피신해 현재까지 난민으로 떠돌고 있다.
살아남은 로힝야 난민들은 미얀마군이 이 과정에서 대량 학살과 강간 등 범죄를 저질렀다고 피해를 호소해왔다. 유엔은 2018년 흘라잉 사령관을 비롯한 미얀마 군부 지도부가 로힝야족 학살과 범죄 책임이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고 ICC가 해당 문제를 조사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ICC 검찰은 2019년부터 관련 조사에 착수했는데, 미얀마 정부의 방해와 군부 쿠데타로 5년 만에야 책임자를 직접 겨냥하게 됐다.
이날 청구 결정에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 캠프에 거주하는 로힝야인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의 마리아 엘레나 비놀리 수석 국제 사법 고문은 “이번 조치는 오랫동안 군부의 대규모 (인권)침해를 부추기던 주요 요인인 불(不)처벌 순환을 끊는 중요한 단계”라고 평가했다. 반면 군부는 “미얀마는 ICC 회원국이 아니며 이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이번 영장 청구가 실제 발부와 체포로 이어질지를 두고도 회의적 목소리가 나온다. 반(反)인도 범죄와 전쟁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2002년 설치된 ICC에는 124개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다. ICC 재판부가 체포영장을 발부할 경우 원칙적으로 회원국은 범죄 수배자가 자국을 방문하면 체포해 네덜란드 헤이그 재판소로 인도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이행하지 않아도 ICC가 강제할 수단이나 권한은 없다. 실제 ICC 체포 대상자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9월 ICC 회원국 몽골을 국빈 방문했지만 오히려 현지 정부의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흘라잉 사령관의 경우 쿠데타 이후 첫 해외 방문지로 중국을 선택했는데, 중국은 ICC 미가입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