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에서) 사고가 나면 장비를 지키는 게 맞을까, 사람을 지키는 게 맞을까. 우리는 아직 사람을 버리고 장비를 지키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자본도, 기술도 없이 가진 것이라곤 사람 하나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의 여전한 현주소를 응축한 문장이다. 자본이 노동보다 우위에 있던 '5,000만 국민' 시대의 논리이지만, 이젠 바뀌어야 산다. 지난해 합계출산율 0.72명, 대한민국은 "잠재적 인구 1,000만 국가"를 향해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국가 소멸'에 이를지 모른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최근 펴낸 책 '천만국가'에서 "우리 미래는 사람이 부족한 '노동 희소 사회'"라고 진단했다. 2007년 출간한 공저 '88만원 세대'로 세대론에 불을 지핀 저자가 이번에는 인구 문제를 정조준했다. 사람 귀한 줄 모르는 '저출생' 한국 사회를 향한 사자후다.
1971년 102만 명이었던 출생아 수는 2023년 23만 명으로 곤두박질쳤다. 연일 역대 최저를 경신 중인 합계출산율에 극적 변화가 없다고 할 때 설정할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시나리오는 '천만국가'라고 책은 강조한다. 정부의 장래 인구 추계대로라면 20년 후 태어나는 연간 신생아는 10만 명, 여기에다 기대수명 100년을 적용하면 한국의 최종 인구는 1,000만 명 정도라는 얘기다.
속도는 더 문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1.0명 이하인 유일한 나라다. 합계출산율 1.08명을 기록했던 2005년 이후 저출생에 대한 위기의식이 사회적으로 일었지만 반짝하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이젠 "대통령 해외 순방보다 관심도가 더 떨어지는 이슈"가 됐다. 저출생 같은 "모두의 문제는 결국 아무의 문제도 아닌" 속성 탓이다.
한국은 "자신의 재생산에 실패한 문명" 신세가 됐다. 책은 이미 숱하게 다뤄진 저출생의 사회경제적 요인 너머 '문명' 차원의 분석을 시도한다. 자본이 희소하고 인력이 넘쳐나던 시기에 싹튼,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문화가 그것이다. "사람을, 특히 노동자를 막 대하고, 가능하면 돈을 적게 주고, 일을 막 시키"는 게 한국 문명의 특징. 국민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는 선진국 경제의 기본인데 우리는 그런 기본을 배우지 못하고 덩치만 선진국이 됐다는 게 책의 지적이다. "너 말고도 일할 사람은 많아" 이런 말이 안 통하는 시대를 맞고 말았다.
그럼에도 저자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노동 희소 사회는 노동시장에서 노동자가 유리한 입장에 서게 한다는 게 그의 견해다. 그동안 문화적 관점으로만 다뤘던 MZ세대들의 '조용한 퇴사'(정해진 시간과 업무 범위 내에서만 일하고 초과근무를 거부하는 노동 방식)나 '워라밸' 중시가 그런 경향을 반영하는 사례다. 일부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주4일제 근무 역시 '좀 더 다니기 나은 회사 만들기'를 위한 맥락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구체적 방안을 내놓는다. 이를테면 학생 수가 감소한다고 교육 예산을 기계적으로 깎지 말고 인프라를 유지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오히려 병원·학교 등 출산·교육 인프라를 국가기반시설이나 지역필수시설로 정할 것으로 촉구한다.
아르바이트생도 행복한 '알바 공화국'을 만들자는 주장도 눈에 띈다. 여기서 '알바'는 시급 노동자는 물론 대리기사나 프리랜서 등을 모두 포함하는 상징적 표현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유산도 없고, 저임금과 고용 불안정에 처한 이들이 엄마나 아빠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은 사회적 정당성을 갖는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를 위해 예산을 편성·집행·관리하는 '알바 출산 지원본부'를 기획재정부 직속으로 두자고 했다.
이렇게 '천만국가'에서 방어선을 친다는 전제하에 스웨덴, 스위스 같은 북유럽 모델은 모범답안이 될 수 있다. 1인당 국민소득 6만 달러를 넘는 '천만국가'들이다. 다만 책은 저출생 해결을 위한 골든타임을 영영 놓친다면 '천만' 선 역시 스쳐가는 숫자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