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시(市)는 이제 사라진 이름이다. 경상남도의 최대 도시로 지역 맹주로 군림했던 마산시는 2010년 인근 창원시·진해시와 합쳐지면서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라는 구(區)의 위치로 내려앉았다. 1910년부터 딱 100년을 존재했다 사라진 마산이란 이름은 거기 살았고 지금도 살아가는 사람들의 부침과 궤를 같이한다. 마산이 고향인 소설가 김기창이 자신의 공간 3부작의 완결을 마산으로 찍은 까닭이다.
과거에는 모두가 “마산으로, 마산으로”를 외치며 수도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던 “꿈에서도 가고픈 남쪽 바닷가 마을”. 그러다 이제는 “점점 낡아 가”면서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가 되어버린 곳. 김 작가는 마산을 배경으로 약 50년의 세월을 장편소설로 써냈다. 1974년의 공장 노동자 ‘동미’와 1999년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사업이 망한 부모님이 해외로 도피한 ‘준구’, 또 2021년의 지방대 학생 '은재'와 '태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언뜻 관계가 없어 보이는 각 시대 마산 청년들의 연결고리는 ‘마약류’다. 동미는 향정신성의약품인 ‘타이밍’과, 준구, 은재, 태웅은 ‘대마초’와 얽힌다. 야간작업이 계속되는 1970년대 마산 공장에서는 노동자에게 각성제의 일종인 타이밍을 반강제로 먹게 한다. 당시 정부와 언론에서는 “미군 부대, 일부 대학가 주변에서 대마초를 비롯한 마약과 각성제, 환각제 등이 유행하고 있다며 현 세태를 질타”하지만 “공장에서는 타이밍 같은 각성제가 버젓이 돌아다니고, 심지어 장려되기까지 했다”. 마약류 단속을 벌이면서도 각성제를 노동자에게 먹이는 일은 방치하는 아이러니다.
돈벌이를 위해 장시간 노동을 버티려 스스로 타이밍을 사먹기까지 했던 마산의 노동 현실은 대표 산업이었던 섬유공업이 저임금 노동력을 앞세운 해외에 밀려나면서 달라진다. IMF 사태와 지방 소멸을 거쳐 쇠락한 지역에서 청년이 밑바닥에서 시작해 노동으로 부를 일구는 건 불가능한 일이 됐다. 돈이 필요한 마산 청년들의 시선은 대마초라는 마약으로 향한다. 누군가는 남의 마약을 훔치고, 누군가는 마약 재배에 뛰어든다. “어중간하게 사는 건 그만할 거야”라는 심정으로. 어중간하게 살다가 “지금 여기 이 자리” 마산에 머무르게 됐다고 자신을 책망하면서.
소설은 청년 네 명과 주변인의 이야기가 번갈아 펼쳐지는 상황에서 화자인 동미의 동생 ‘찬수’까지 등장하며 다소 혼란하게 전개된다. 반세기라는 썩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번성했다 사라진 마산의 상황만큼이나 그렇다. 저마다 악착같이 살아가는 청년들이지만, 범죄를 저지르려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응원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끝내 살아가려는 마음을 지나친 욕심이라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김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마산을 두고 “몇몇 지역을 제외하곤 도시의 불빛조차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비워 버린 술잔처럼, 다시 피지 않는 꽃처럼”이라고 말하면서도 덧붙인다. “그러나 삶의 불꽃이 일어나지 않는 도시는 없다.”
고독사를 다룬 작품 ‘모나코’와 외국인 노동자를 그린 ‘방콕’에 이어 지방 소멸을 이야기하는 ‘마산’까지. 김 작가의 시선은 소외된 인간의 삶, 그리고 존엄으로 향한다. 창원시 인구는 2010년 통합 당시와 비교해도 14년 만에 8만3,588명이 줄었다. 특히 마산은 20년 전에 비해 거리 유동 인구가 50% 감소했고 건물 10개 중 7개가 노후건축물(창원경제연구포럼 집계)이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거, 다 옛말”이고 “요즘은 집 떠나야 팔자”가 핀다지만, 영원히 누군가의 집인 그곳에는 여전히 사람이 산다. 그리고 또 새로운 사람이 찾아오기도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뭔가 나아지리란 희망이 사라지고, 또 다른 희망이 스멀스멀 피어나”면서 마산에서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