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레바논 친(親)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27일(현지시간) 60일짜리 휴전에 돌입했다.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침공하고 하루 뒤 헤즈볼라가 '하마스 연대'를 표방하며 분쟁을 시작한 지 13개월 만이다. 막판까지 맹폭을 주고받던 양측은 휴전 개시 시점인 이날 오전 4시부터 교전을 전면 중단했다. 국제사회와 레바논 주민들은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를 환영했지만 언제든 전쟁이 재개될 수 있다는 긴장도 여전하다.
이스라엘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부터 이스라엘·레바논 국경을 오가던 포성은 자취를 감췄다. 지난 13개월간 레바논인 약 3,800명, 이스라엘인 약 120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이 비로소 중단된 것이다. 지난 9월 말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을 겨냥한 지상전 '북쪽의 화살' 작전을 개시한 지 2개월 만의 평화이기도 하다. 알자지라는 "레바논 피란민 수천 명이 남부 고향으로 돌아가며 차량 경적을 울리고 휴전을 축하하고 있다"고 전했다.
휴전은 이스라엘 안보 내각이 전날 '60일 휴전안'을 승인하며 공식 성사됐다. 이 휴전안은 미국과 프랑스 정부 중재하에 마련돼 레바논 정부와 헤즈볼라가 지지해 이스라엘 답변만 남아 있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전날 안보 내각을 소집하고 휴전안이 '찬성 10표 대 반대 1표'로 통과되며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휴전 합의가 완성됐다.
총 13개 항으로 이뤄진 휴전 합의문 핵심은 '이스라엘·레바논 국경에 군사적 완충지대를 조성한다'는 2007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701호를 재확인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군과 헤즈볼라는 향후 60일 내에 국경 지대에서 완전히 철수해야 한다. 레바논 정부군과 유엔 평화유지군(UNIFIL)이 레바논 남부 리타니강 이남 지역을 지키며, 미국·프랑스 등이 참여하는 감독위원회가 합의 이행 여부를 감시한다.
국제사회는 일제히 휴전을 환영했다. 특히 휴전 타결에 공을 들였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좋은 소식"이라고 강조했다. 레바논 정부와 이란 정부도 환영 성명을 냈다. 다만 헤즈볼라는 별도 논평을 하지 않고 있다.
휴전 성사 과정에서 '마지막 걸림돌'은 네타냐후 총리였다. 그는 협상 타결 가능성이 높았던 지난 9월 헤즈볼라를 상대로 무선호출기(삐삐)·무전기 폭탄 공격(17, 18일)을 감행해 휴전판을 뒤엎었다. 같은 달 27일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 폭사 사건은 그나마 남아있던 휴전 동력마저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는 네타냐후 총리가 전쟁 지속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는 것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분석이다. 이미 헤즈볼라 지도부를 상당수 제거하는 등 상당한 전쟁 성과를 냈기 때문에 전쟁을 중단해도 이스라엘에 큰 손해는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휴전 압박과 지난 21일 국제사법재판소(ICC)의 '네타냐후 체포영장 발부' 등 국제사회 압력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네타냐후 총리는 △자국군 전열 정비 △하마스 고립 △이란 겨냥 공세 집중 등을 휴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다만 전쟁 재발 가능성도 여전하다. 특히 휴전안에 담긴 '자위권 보장' 조항이 향후 갈등 뇌관으로 꼽힌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자위권을 보장받는다"는 내용인데, 이를 두고 네타냐후 총리는 "헤즈볼라가 (레바논 남쪽에서) 무장을 시도하면 우리는 공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보 내각에서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던 이타마르 벤그리브 국가안보장관과 이스라엘 극우 인사들도 "레바논과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