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레바논 친(親)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26일(현지시간) '60일간 휴전'에 합의함에 따라, 악화일로였던 중동 정세가 최대 변곡점을 맞게 됐다. 지난해 10월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전쟁을 개시했던 이스라엘이 레바논, 이란 등으로 전선을 넓히며 이른바 '저항의 축'(반미·반이스라엘 동맹)과 전면전에 나섰던 흐름이 일단 한풀 꺾였다는 얘기다.
그러나 '중동의 안정'으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당장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 그리고 이란에 대해선 총공세를 공언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임시 휴전'일 뿐이라는 한계가 있고, 실제로도 이번 전쟁의 발원지인 가자지구에선 포성이 잦아들 기미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이스라엘·헤즈볼라 간 휴전 합의를 발표하면서 다음 목표는 '가자 전쟁 휴전'임을 명확히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으로 미국은 튀르키예·이집트·카타르·이스라엘 등과 함께 가자에서 인질이 석방되고, 하마스가 통치하지 않는 상태로의 휴전을 달성하기 위해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레바논 휴전을 '중동 안정'의 모멘텀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란을 비롯한 '저항의 축'도 휴전을 환영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휴전 발효(27일 오전 4시) 직후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이) 레바논 침략을 멈추기로 했다는 소식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하마스는 더 전향적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하마스 고위 당국자는 27일 "휴전 합의와 포로 교환을 위한 진지한 거래를 할 준비가 됐다고 중재국들에 알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입장에선 온도차가 느껴진다. 네타냐후 총리는 26일 영상 연설에서 휴전 합의에 대해 "첫 번째는 이란의 위협에 집중하는 것, 두 번째는 우리 군을 쉬게 하고 (무기) 재고를 보충하는 것, 세 번째는 전선을 분리해 하마스를 고립시키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다른 전선에서도 '평화 모드'로 전환하는 것은 아니라고 못 박은 것이다.
오히려 레바논에서 뺀 전력을 재정비해 이란 및 하마스를 겨냥한 공격 수위를 바짝 끌어올리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중동 분석가 앤드루 잉글랜드는 과거 양측이 36일간 전투를 벌이다 휴전했던 2006년에도 합의가 쉽게 깨진 적이 있다며 "언제라도 떼어질 수 있는 반창고 같은 평화"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가자지구 휴전'은 녹록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애당초 가자 전쟁이 지금의 중동 위기를 낳은 시발점이자 본류라는 이유에서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HA 헬리어 선임연구원은 미국 CNN방송에 "헤즈볼라·이스라엘 간 (휴전) 협정은 가자지구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가자지구에서의 일시 휴전은 딱 한 차례(지난해 11월 24일~12월 1일), 그것도 일주일이 전부였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와의 휴전을 승인한 것은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계산'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이 발부되는 등 국제적 입지가 더 좁아지자, 어느 정도 무력화에 성공했다고 판단되는 헤즈볼라와 휴전 합의를 서둘러 맺은 게 아니냐는 뜻이다.
특히 집권 1기 당시 이스라엘과 밀착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집권 2기를 앞두고 있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 됐을 법하다. 60일간의 휴전이 끝날 때쯤인 내년 1월 20일, 트럼프 2기 미 행정부가 출범한다. FT는 "이스라엘로선 퇴임하는 바이든을 달래는 동시에, 이스라엘에 더 우호적인 트럼프의 복귀를 기대할 수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