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용노동부 알선으로 2021년 2월 경기 안성시의 한 농기계 제조업체에 부푼 꿈을 안고 취직했던 방글라데시 출신 아지트 로이. 입사 직후 실시한 건강검진에서 아무 문제가 없었던 그는 10개월 뒤 폐질환 진단을 받고 폐기능 40%를 잃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라인딩 작업 등 하루 8시간 이상 '쇳가루 마시는 일'을 했지만, 회사가 준 안전장비는 면마스크가 고작이었다.
그가 산재 신청을 하자 돌아온 것은 회사의 협박이었다. 일을 할 수 없어 생계는 곤란한데 취업 비자(E-9)가 만료돼 건강보험을 더는 적용받지 못하게 되면서 산재 인정을 받기도 전에 출국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27일 열린 간담회에서 연신 기침하며 발언하던 로이는 "한국 정부가 소개해준 사업장에서 일하다가 폐질환을 얻었는데, 한국 정부는 (산재 관련한) 소송이 진행 중임에도 체류 비자도 주지 않는다"고 눈물을 흘렸다.
이주노동자 도입 절차의 공공성과 투명성 강화를 위해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지 올해로 20년이 됐지만 임금체불과 중간착취, 목숨을 위협하는 작업환경 등 열악한 노동실태는 제자리라는 현장 증언이 재차 나왔다. 한국 정부가 생산인구 감소에 대응해 외국인 인력 도입을 대폭 늘리고 있지만, 노동환경 개선 등 그에 수반한 책임에는 소홀하다는 비판이 많다.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주노동자로부터 직접 듣는다' 브리핑에는 인신매매, 임금체불, 직업성 질병 피해를 겪은 이주노동자들과 관련 전문가들이 참석해 한국의 이주노동 현실을 전했다. 인신매매란 강제노동, 성착취 등 사람을 물건처럼 거래하는 행위로, 이주노동자의 취약한 지위를 악용해 이동을 통제하거나 임금을 착취하는 행위도 법적 인신매매로 인정된다.
이주노동자가 겪는 전형적인 피해 중 하나는 임금을 '송출 브로커'(중개인)에게 뜯기는 경우다. 명백한 불법이지만 정부와 지자체 감독 미비하에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는 게 현장 활동가들의 증언이다. 필리핀 출신 산티아고는 '미스터 홍'이라 불리는 한국인 브로커를 통해 올해 4월 충북 괴산군 소재 농협에 계절노동자로 취직했는데, 이후 4개월 동안 중개비 명목으로 총 275만 원을 뜯겼다. 노동 환경도 열악해 지난 8월 폭염 속에서 일하던 동료가 열사병으로 숨지기도 했다.
경기 안성시 소재 농협에 취직한 계절노동자 메리 크리스도 동일한 브로커에게 피해를 봤다. 월급 절반가량인 62만 원을 다달이 '미스터 홍'이 떼가면서, 장시간 노동에도 그가 받은 월급은 60만~85만 원에 불과했다. 부당함을 느낀 메리가 월급일에 돈을 전부 인출해 '브로커비 자동이체'를 막자, 브로커는 "돈을 안 내면 조기 귀국시켜 버리겠다"며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오랜 기간 이주노동 현장에서 활동해 온 전문가와 활동가들은 현행 이주 인력 관리·지원 방식에 변화와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윤석열 정부는 '일손 부족'을 이유로 과거 연간 5만 명 안팎이던 고용허가제 규모를 올해 3배 수준인 16만5,000명까지 확대한 상태다. 직종 역시 아이돌봄, 마을버스 기사 등 확대 추세다. 하지만 정작 이들에 대한 지원센터는 폐쇄하는 등 노동권 감독은 도리어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로이의 산재 소송을 돕고 있는 최정규 변호사는 "로이의 산재 신청 이후 회사가 공장 설비를 전부 교체해서, 과거 업무 환경의 유해성을 입증하기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외국인 인력을 고용하려는 사업체에 대해 정부는 사전 검증 작업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이찬 '지구인의 정류장' 대표는 "2017년 이후 고용부가 확인한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규모만 매년 1,000억 원 이상인데, 경험상 이 중 60%만 (정부가 회사 대신 주는) 간이대지급금으로 받을 수 있고 나머지 40%는 사실상 받기 어렵다"면서 "임금체불 피해에 나 몰라라 하면서 매년 수만 명을 들여오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