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예고한 ‘관세 폭탄’이 자충수가 되리라는 관측이 미국에서 나왔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겨우 누그러뜨렸는데 전방위로 오르는 수입품 가격이 다시 부추길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우려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현지시간) “많은 미국인이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투표한 게 조 바이든 행정부 때 폭등한 물가 때문인데 트럼프발 관세 탓에 벗어나나 싶던 인플레이션 국면으로 도로 들어가게 생겼다”고 보도했다. 전날 트럼프 당선자는 트루스소셜을 통해 내년 1월 취임 첫날 멕시코·캐나다에서 들어오는 제품에 각 25%의 관세를 매기고, 중국발 수입품에는 10%의 관세를 기존 관세에 추가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불법 이민과 마약을 이유로 들었다.
WSJ에 따르면 관세의 부작용은 무엇보다 인플레이션이다. 트럼프 당선자의 관세 구상을 반영해 이날 미국 예일대 예산연구소가 다시 추산한 내년 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75%다. 손실되는 가구당 구매력으로 환산하면 1,000달러(약 140만 원)가 넘는다는 게 연구소 설명이다. 인플레이션이 강해지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미국 가정은 높은 대출 금리까지 감내해야 한다.
가격 상승이 가장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제품은 자동차다. 1992년 미국이 멕시코·캐나다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은 뒤 미 자동차 제조사들이 양국에 완성차 생산과 부품 조달을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매년 두 나라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자동차 부품이 970억 달러(약 135조6,000억 원) 규모이고 완성차가 약 400만 대인데, 25% 관세가 붙으면 미국에서 팔리는 차량의 평균 가격이 3,000달러(약 420만 원)가량 오를 수 있다는 게 투자분석업체 울프리서치의 추정이다.
가격 인상은 소비자 고통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수요가 줄면 매출도 줄고, 고용 감소가 이어지게 마련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하이브리드·전기차 선호 증가, 중국차 부상 등으로 가뜩이나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 자동차 업계 사정을 관세가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멕시코 대상 관세 부과는 미국 업체에 직격탄이다. 멕시코에 공장이 있는 완성차 업체 중 지난해 매출 1~3위인 제너럴모터스(GM)·스텔란티스·포드가 모두 미국계 브랜드인데, 이날 이들 3사 주가는 각각 8.99%, 5.68%, 2.63% 하락했다.
농산물 등 미국 수출품에도 관세는 악재다. 상대국이 보복 관세를 부과하기 십상이어서다. 실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이날 공개한 트럼프 당선자 앞 서한에서 “관세는 또 다른 관세를 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멕시코는 1기 트럼프 행정부 때인 2018년에도 철강·알루미늄 등에 미국이 고율 관세를 부과하자 공화당 강세 지역 생산 제품군 위주의 보복 관세로 맞불을 놓은 바 있다.
이렇게 역풍이 불 게 뻔하다 보니 협상용 엄포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캐피털이코노믹스 애널리스트 토머스 라이언은 로이터통신에 “부과 이유로 국경을 넘어오는 마약과 불법 이주민을 거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관세 위협은 수입 증대보다 협상 도구에 가까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뉴욕 증시 3대 주가지수도 별다른 동요 없이 모두 강세로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