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값 매입해 부동산 재개발"…여수산단 사택 '땅 투기용' 전락 논란

입력
2024.11.27 16:20
롯데케미칼 사택 재개발에
시민단체 "부동산 차익 실현"
도심 포화 상태 직면 우려도
사택 보유 16개 대기업들
부동산 개발 신호탄이냐, 우려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입주 대기업들이 노후화된 사택의 현대화를 명목으로 아파트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투기' 논란이 일고 있다. 도심 포화 문제는 물론 사택 조성 당시 부지를 강제 수용해 헐값에 사들인 기업들이 부동산 개발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챙기려 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27일 여수시 등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여수시 선원동에 위치한 사택 부지 15만㎡에 29층 규모 아파트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제출, 행정절차를 밟고 있다. 총 2,635세대 중 931세대는 사택 용도로 사용하고 나머지 1,722세대는 일반 분양해 재건축 비용을 충당한다는 구상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9월 시에 이런 내용을 담은 지구 단위 변경 계획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지난 19일 교통영향평가 심의위원회가 도심 포화 등을 이유로 재심의 결정을 내렸다. 롯데케미칼이 보완 계획서를 제출해 교통영향평가를 통과하면 이후 환경영향평가, 주민 의견 청취,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 절차를 거쳐 재개발 여부가 최종 확정된다.

여수산단 입주 기업들이 사택 재개발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3년 12월에도 GS칼텍스와 LG화학, 한화 석유화학 등은 보유 부지 10%를 기부채납하는 조건으로 사택 재개발을 추진했으나, 지역사회 반발에 부딪쳐 무산됐다.

기업들의 사택 재개발이 논란이 되는 것은 이들이 1970년~1990년대 당시 사택 조성을 명목으로 부지를 강제 수용해 헐값에 사들였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 사택 부지는 1979년 당시 산업기지개발촉진법(현 산업입지법) 제10조에 따라 강제 수용해 조성한 곳으로,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등 세제 혜택까지 받아 왔다. 앞서 롯데케미칼은 부동산 개발을 대가로 인근 도로 1차선 확장, 100면 이상 주차장 건립, 7,000㎡ 규모 소공원 조성 등 500억 원 가량의 기부채납을 제안한 반면 개발 수익은 최소 수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도심 포화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롯데케미칼 사택이 위치한 여수시 선원동은 여수 시청과 인접한 노른자위 땅으로 이미 주택 보급률이 108%에 달하는 최대 인구 밀집 지역 가운데 하나다. 사택 부지를 재개발해 아파트를 건립할 경우 일조권, 조망권, 교통 문제 등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교통영향평가 심의위는 사택 부지에 아파트가 들어설 경우 새 도로를 건설하더라도 여수시청 앞을 가로지르는 도원로 일대가 꽉 막히는 데다, 현재도 가장 빈번하게 정체가 발생하는 무선로 일대에 심각한 교통대란이 발생할 것으로 판단해 재심의 결정을 내렸다.

산단 사택을 보유중인 타 기업들 역시 롯데케미칼 사택의 재개발 계획 통과 여부를 주시하고 있다. 실제로 사업 추진이 이뤄진다면 부동산 개발 경쟁이 우후죽순처럼 이어질 것이란 비판도 제기된다. 여수산단 내 사택을 보유 중인 기업들은 모두 16곳에 달한다. 앞서 한화솔루션은 소호동 21만㎡ 사택 부지에 2,900세대 규모 아파트를 지으려고 도시관리계획 변경 신청서를 지난 5월 제출했다가 두 달여 만에 철회했다. 이밖에도 LG화학, GS칼텍스, 남해화학, DL건설, 롯데 첨단소재 등도 사택을 보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이 보유한 사택은 주로 학동, 소호동, 선원동 등 지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핵심지역에 집중돼 있다.

강흥순 여수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롯데케미칼 사택 부지 재개발사업은 누가 봐도 부동산 개발 이익을 노린 꼼수"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정당한 법적 테두리 내에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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