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정부가 북미대화를 재개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한국 패싱'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이 파병을 통해 러시아와 전례 없이 밀착한 반면 남북관계는 '적대국가'로 단절된 상황에서, 미국마저 북한과 직거래에 나서면 한국은 대북 지렛대를 모두 잃는다.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한반도 운전자'를 자처하던 문재인 정부 때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이터 통신은 26일(현지시간) "트럼프의 정권 인수팀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직접 대화 추진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이 아직 두 달 남은 시점에 벌써 북미대화를 언급한 것이다. 트럼프 1기 정부 시절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이 최초로 만나기까지 정권 출범 후 1년 5개월이 걸렸다. 그때와 비교하면 상당히 빠른 속도다. 당시와 달리 상·하원을 모두 공화당이 장악한데다 트럼프가 이미 김정은을 경험해봤다는 자신감이 더해졌다. 트럼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연동된 북한 문제를 속전속결로 해결해 외교 성과를 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앞서 2018~2019년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운전자론을 주창하며 북미 사이에서 비핵화 문제의 중재자를 자임했다. 2018년 2월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넉 달 뒤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을 견인했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이듬해까지 베트남 하노이와 판문점을 포함해 3차례 만났다. 그럼에도 구체적 성과를 내지 못해 이후 북미대화는 중단됐다.
하지만 현재 정세는 당시와 180도 다르다. 북한과 러시아는 파병을 통해 '혈맹' 수준으로 관계가 격상됐다. 반면 남북관계는 파탄 수준이다. 북한은 대남 적대시 정책을 고수하며 남북이 연결된 모든 도로를 끊었다. 트럼프가 '톱다운' 방식으로 김정은과 직접 접촉한다면 한국은 운신의 폭이 급격히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현 단계에서 윤석열 정부는 트럼프 측과 협력해 평화외교에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반응도 관건이다. 그는 최근 "우리는 이미 미국과 함께 협상으로 갈 수 있는 곳까지는 다 가봤다"며 "결과에 확신한 것은 초대국의 공존 의지가 아니라 적대적인 대조선정책"이라고 못박았었다. 당장은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과거와 달리 핵무력 고도화를 이룬 북한으로서는 대화에 응할 유인이 많지 않다"며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라는 최소한의 전제조건이 담보돼야 대화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