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정권 인수팀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추진 중인 가운데,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주(州) 주지사가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나섰다. 캘리포니아에서만큼은 보조금을 유지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뉴섬 주지사는 민주당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 중 한 명으로, 벌써부터 공화당 소속 트럼프 당선자와 각을 세우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뉴섬 주지사는 25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연방 차원의 전기차 세액 공제가 없어지더라도 주정부 차원에서 전기차 구입비 중 일부를 돌려주는 방식으로 그 공백을 메우겠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는 전기차 구매를 장려하기 위해 2010~2023년 무공해 차량 구매자에게 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50만 원)를 환급해 주는 제도를 운영했는데, 이를 부활시키겠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뉴섬 주지사는 "캘리포니아는 친환경 교통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오염을 일으키지 않는 차량을 몰 수 있도록 더 저렴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도입된 전기차 세액공제는 IRA에 근거하고 있다. IRA는 총 4,370억 달러(약 612조 원)를 세액 공제나 보조금 형태로 청정에너지 산업 육성, 기후변화 대응 등에 쓰는 것을 골자로 한다. 트럼프 당선자는 대선 과정에서 IRA를 '신종 녹색 사기'라고 부르며 폐지를 별러 왔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트럼프 정권 인수팀이 전기차 세액 공제 폐지를 실제로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캘리포니아주는 미국 50개 주 가운데 전기차 보조금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에서 등록된 전기차가 가장 많은 상위 5개 도시가 모두 캘리포니아에 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지난해 전체 등록 차량 중 30%가 전기차였다. 2035년부터는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내연기관 차량의 신차 판매가 금지된다.
캘리포니아는 이번 대선에서도 트럼프 당선자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꺾지 못한, 대표적인 '블루 스테이트'(민주당 우세 지역)이다. 주의회도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다. 뉴섬 주지사의 계획이 어렵지 않게 의회 동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날 뉴섬 주지사의 발표는 사실상 트럼프 당선자를 향한 선전포고로 해석됐다. 주정부의 방향과 다른, 트럼프 2기 행정부 방침에 순순히 맞춰 주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함께 겨눈 것으로 분석된다. 테슬라의 경우 캘리포니아의 환급 프로그램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뉴섬 주지사 측은 "테슬라는 캘리포니아 시장에서 이미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며 "(테슬라를 포함시키는 것은) 시장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려는 프로그램의 취지에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고 NYT는 전했다.
이와 관련해 머스크는 "이것은 미친 짓"이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뉴욕 증시에서 이날 테슬라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3.96% 하락 마감했다.